3월에 발매된 ‘정태춘 박은옥 20년 골든 앨범’을 들으며 그들의 20년을 더듬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10년도 되고 20년도 되는 법이지만, 그들의 노래 인생은 외따로 떨어진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우리네 삶의 한 자락이 그 노래들에 겹치기 때문이지요.
초등학교 시절부터 두 사람의 목소리를 좋아했습니다. ‘봉숭아’와 ‘윙윙윙’을 따라 부르던 여름 한낮, 마당에는 고추잠자리가 유난히 많았지요. 박은옥은 텔레비전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맑디 맑은 음성은 양희은과는 또다른 순수와 평안을 주었지요. 캠퍼스 커플의 애창곡 또한 ‘사랑하는 이에게 3’입니다. 나란히 서서 한 소절씩 주고받으면 서로를 아끼는 정이 소줏잔 가득 흘러넘치곤 했지요.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라고 김수영은 주장했습니다. 그 화두가 어찌 시에만 해당되겠습니까. 노래도 춤도 소설도 그림도 세상을 품고 사랑하려는 처절한 몸짓이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그 아름다운 몸짓을 보여주는 예술가는 드뭅니다. 특히 젊은 날의 예술관을 부정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 대중가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변방으로만 떠돌던 정태춘이 기타 하나 둘러메고 서울의 한 복판에 나타났습니다. 사전 심의의 부당성을 소리 높여 주장하며 무겁고 단단한 곡들을 선보였지요. 사회에 대한 고민, 역사에 대한 생각들을 때론 이야기로 때론 노래로 풀어냈습니다. 왜 그는 북한강과 시인의 마을에서 나즈막히 읊조리기를 멈추고, 도심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며 활활활 불타오르는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까요. 사전 심의를 받지 않은 ‘불법’ 테이프를 팔며, 공범(共犯)이 됨으로써 법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자고 주장하게 되었을까요.
한 동안 그는 박은옥 없이 혼자 시위 현장을 누볐습니다. 천박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하며 분노하고 눈물 쏟았지요. 그의 노래는 촛불처럼 흔들리는 영혼을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 삶의 밑바닥을 아프게 훑는 비판적 현실주의에 맞닿았습니다. 이번 앨범에는 빠졌지만 ‘우리들의 죽음’이란 곡은 정말 충격적이었지요.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 하고 질식해 숨진’ 사건을 불에 타 죽은 아이들의 관점에서 그려냈습니다. 도시 빈민의 고통이 애절하게 묻어나왔지요. 냉전은 끝났어도 우리네 이웃의 힘겨운 하루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꼼꼼히 살피고 정직하게 노래한 것입니다. 이 거대한 허무와 절망의 벽 앞에서 그는 과연 어떤 희망을 품게 되었을까요.
박노해의 옥중시 ‘작아지자’를 아시는지요. ‘자신을 지키려는 수고도 / 작아지면 아주 작아지면 텅 비어 여유로우니 / 나의 사랑의 시작은 작아지는 것이요 / 나의 성숙은 더욱 작아지는 것이며 / 나의 완성은 아무것도 없어지는 것’이라는 구절은 머리로 쓴 것도 아니고 가슴으로 쓴 것도 아닙니다.
박노해가 감옥에서 자신의 활동을 반성하며 ‘그해 겨울나무’를 키운 것처럼, 정태춘도 20년 동안 불렀던 노래들을 하나하나 매만졌군요. 반성은 깨달음을 낳지요. 출옥 후 박노해는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깨달음을 내놓았습니다. 2002년 봄, 정태춘의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김수영은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야 한다고 했지요. 이제 지난 시절을 정리했으니 정태춘과 박은옥도 신곡을 발표할 겁니다. 기대가 큽니다. 그들의 음악세계가 얼마나 넉넉해졌는가를 살피는 것도 기쁨이지만, 이 험난한 시절을 인간답게 사는 지혜를 두 사람의 노래에서 얻고 싶습니다. 깨달음이 담긴 그들의 노랫가락은 대중들에게 신선한 예술적 체험을 선물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올곧은 정서를 퍼뜨리겠지요. 오랜 기다림에 지치셨다면 ‘골든 앨범’을 들으세요. ‘아, 검은 물결 강을 건너 / 아, 환멸의 90년대를 지나’(‘건너간다’) 정태춘과 박은옥이 당신의 집 대문에 막 이르렀음을 확인하세요.
김탁환 〈소설가·건양대 교수〉 tagtag@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