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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의 현주소]초등생 2명의 선행학습 경험

입력 | 2002-04-22 18:06:00


▼˝1주 내내 학원다니기 괴로워 학교수업 재미가 없어요˝▼

“저는 노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매일 학원에서 이 다음에 배워도 될 것을 미리 배우는 공부만 하려니 하루 하루가 지옥같아요. 밤 9시까지 학원에서 수업을 받다가 꾸벅꾸벅 졸기 일쑤입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초등학생 전문 학원에서 만난 초등 6학년 L모군(12)은 선행학습에 대해 이미 염증이 난 듯했다.

L군은 초등학교 입학 전 이미 초등 2학년 수학을 다 배웠다. 요즘에는 경시대회를 목표로 영어 수학 과학 등 3과목을 중학교 2학년 과정까지 공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수학 과학 등 경시대회에 10번이나 나갔다.

“어려서 영양분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나중에 ‘밥’을 안 먹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성장이 멈춰 버리지 않을까요.”

L군은 1주일 내내 학교가 끝난 뒤 선행학습 학원으로 향한다. 영어, 수학, 과학, 축구, 컴퓨터 등 학원 7곳을 다닌다. 일요일에도 오후 3시반에 나가 과학과 수학 학원에서 공부하고 밤 10시가 돼서 집에 온다.

L군이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영어. 학원 강사는 중2 영어 단어와 문장을 달달 외우라고 다그치기 때문이다. 수학 과학은 좋아하지만 너무 어려운 중학교 참고서와 문제집을 푸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점점 흥미가 떨어진다는 것.

초등 6학년 L군의 학원시간표

요일

수업

오후 4시∼6시20분(중2 영어)

오후 5∼6시(컴퓨터)

오후 1시반∼4시(중2 영어)

오후 7∼9시(중2 수학)

오후 3시∼4시30분(중2 영어)
오후 6∼8시(중2 수학)

오후 5시∼6시반(축구)

오후 3시반∼6시반(중2 과학)
오후 8시∼10시(중2 심화 수학)

학교에서는 다 아는 내용을 배우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 아예 학원 숙제를 한다. 학원 숙제 때문에 정작 학교 숙제를 못해 혼나는 경우가 잦았다.L군은 “친구들보다 공부는 내가 더 많이 하지만 학교 수업시간에 재미있게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해도 안되는 수학 공식 무조건 외우라고만 해요˝▼

“수학 문제를 며칠 동안 궁리하다 마침내 풀었을 때는 얼마나 짜릿한지 몰라요.”

서울 강남의 초등 5학년 이모군(12)은 ‘수학천재’로 불린다. 지난해 9개 경시대회에서 입상했고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상까지 받았다. 올해는 한 대학의 영재교육센터에서 영재교육을 받고 있다.

이군이 생각하는 수학은 ‘문제풀이 훈련’이 아니다. 수학 문제는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 “자동차 번호판을 보면 사칙연산을 해 일정한 수를 만들거나 쇼핑 때도 세일가격 등을 얼른 계산해 엄마에게 알려줘요. 택시비도 미터기를 보고 거리와 요금을 계산한 적도 있어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경우도 많아요.”

이군은 수학문제 속에 숨어있는 규칙이나 원리를 찾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푼 친구와 토론을 할 때가 즐겁다.

매일 1시간씩은 수학공부를 한다. 초등 2학년 때 학원에 처음 갔다. 올해 초 친구들과 함께 고교 수학을 가르치는 선행학습 학원에 등록했다가 한달만에 포기했다.

“수학 용어도 어려웠지만 문제를 잔뜩 주고 무조건 풀라고 해요. 아무 생각없이 문제만 푸는 공부가 너무 싫었습니다.”

‘삼각함수’ ‘탄젠트’ ‘미분’ ‘적분’ 등 고교 수학 용어도 그때 배웠지만 아직도 정확한 뜻은 모른다.

“이제 경시대회에는 안 나갈 겁니다.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고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놀러 다니느라 오히려 학교 공부에 소홀해지거든요.”이군은 훌륭한 수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요즘은 수학에 관련된 책을 더 많이 읽는 등 생각하는 수학 공부에 시간을 더 투자할 계획이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