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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약이 독으로"… 신음하는 코스닥

입력 | 2002-04-23 17:22:00


요즘 종합주가지수 1000 시대를 내다보는 전문가는 많다.

그러나 코스닥지수 100 시대를 낙관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코스닥지수 100은 고작 96년 시장 출범 당시의 지수, 즉 본전일 뿐이다.

코스닥이 지수 300을 육박하며 절정을 이뤘던 1999년과 2000년 초 코스닥은 그야말로 ‘꿈의 시장’이었다. 기업에는 큰 자금을 조달해주는 창구로, 개인투자자에게는 ‘팔자를 고쳐주는’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최근 코스닥지수는 다시 하락세로 돌아서며 80 선마저 위협받게 됐다. 거래소보다 상대적으로 주가 상승률이 낮아 가격 메리트가 여전하다는 설명도, 등록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완전히 무시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주장도 잘 통하지 않는다.

무엇이 코스닥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최근 이유를 과거 ‘코스닥 거품의 시대’로부터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1999년과 2000년 코스닥을 절정으로 이끌었던 다섯 가지 논리가 지금 거꾸로 코스닥에 독(毒)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체 불확실” 선입견 형성▼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99년 당시 증시에서 가장 유행했던 말 중 하나가 패러다임 시프트였다. ‘산업구조의 혁신적 변화’라는 우리말보다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말해야 알아듣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이 말은 인기였다.

주가수익비율(PER)이 1000배가 넘고 매출이 거의 없으며 부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한마디 설명으로 높은 주가가 설명됐다.

거꾸로 지금은 ‘미래 성장성’을 지닌 기업은 시장에서 찬밥 신세다. 가능성이 높아도 실적이 좋지 못하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지난해 이후 한국 증시는 굴뚝산업으로 불리는 전통주와 내수 우량주 등 안정성이 검증된 종목이 이끌었다.

▽나스닥과 동조화〓당시 나스닥시장에도 ‘미래와 첨단기술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근거해 주가에 거품이 형성됐다. “코스닥이 왜 올라야 하나”의 질문에 해답이 군색할 때는 으레 “나스닥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제시됐다.

최근 거래소 시장은 미국 증시와 동조화 현상의 고리를 상당히 끊고 독자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코스닥은 아직도 나스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나스닥 급락에 주가가 출렁이고 있다.

▽시장 프리미엄〓코스닥 등록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올랐다. 1999년에는 몇몇 상장 기업들이 코스닥으로 이전을 추진했고 일부 거래소 기업은 코스닥 흉내를 내느라 사명을 ‘닷컴’ ‘테크’로 고치기도 했다. 지금은 오히려 코스닥 시장에 역(逆)프리미엄이 생겼다. ‘코스닥 등록기업은 거래소 상장기업보다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기업 구조가 더 약하다’는 선입견이 형성된 것.

▽‘모른다(I Don’t Know)’ 효과〓뭐 하는 기업인지 모르기 때문에 주가가 오르는 현상. 과거에는 매출 구조가 이해가 가지 않는 기업일수록 첨단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으로 인정받으며 주가가 올랐다.

이 효과는 거꾸로 최근 ‘기업 내용을 모르면 투자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코스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첨단 용어가 나오면 투자자들이 기피한다. 자동차, 반도체 등 투자자가 잘 아는 기업 중에도 주가가 오를 회사가 많은데 굳이 모르는 기업에 투자할 이유가 없기 때문.

▽사이버트레이딩 발달〓클릭 한번으로 매매가 가능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저가주가 몰려있는 코스닥이 큰 혜택을 입었다. 투자자들이 1000원짜리 10주, 1500원짜리 30주 등 객장에서는 내기 어렵던 주문도 쉽게 낼 수 있게 된 덕분.

그러나 최근에는 ‘코스닥〓저가주〓데이트레이딩’이라는 공식이 형성되면서 장기투자자들이 코스닥을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해지는 추세가 형성됐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은 기업을 중심으로 장기투자자가 모이며 주가가 꾸준히 오르는 최근 거래소 시장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성장성 보고 투자’는 옛말▼

▽의미와 전망〓거품은 한번 꺼지면 몇 년이 지나더라도 그 시장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지금 코스닥시장이 바로 그런 모습을 보일 듯하다.

과거에는 매출은 100억원대인데 시가총액은 수천억원대인 비상식적인 주가를 합리화하기 위해 논리가 적지 않게 개발됐다. 이 논리가 다시 투자자를 끌어들였고 주가에 거품을 만들었다. 이런 아픈 기억 탓에 ‘미래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한다’는 코스닥시장의 취지가 퇴색하며 투자자들에게 외면받는 현실이 만들어진 것.

장영수 동부증권 기업분석팀장은 “한번 거품을 겪고 나면 투자자들이 그 시장의 장점을 모조리 잊는 경향이 크며 그것이 바로 거품의 진짜 무서운 점”이라며 “코스닥이 투자자의 근본적인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앞으로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