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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축구이야기]황선홍, 부상 징크스 깨라

입력 | 2002-04-23 17:54:00


축구의 8할은 심리전이다. 강철같은 의지와 전략, 전술은 심리적 안정감에 의해 완성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심리전이란 ‘임전무퇴, 하면 된다’는 식의 자기암시적 최면술 뿐이었다. 이는 목표에 대한 필요 이상의 부담으로 경기도 망치고 선수마저 부상당하는 부작용이 더 크다.

심리적 자신감이란 구체적인 근거 속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황선홍의 이미지 트레이닝이 좋은 예다. 그는 경기 전날 갖가지 조건과 변수를 놓고 자신의 움직임을 상상한다. 자신을 밀착 마크할 상대 수비의 특징, 함께 뛸 동료의 스타일, 그날의 컨디션 등을 두루 고려하면서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뛰면서도 파괴력만큼은 최고로 할수 있을까를 끈질기게 상상한다. 오죽하면 그의 아내 정지원씨가 ‘경기 전날 남편이 생각에 빠져있는 걸 보면 입이 탈 정도’라고 했겠는가.

그렇게 자신을 단련했다 해도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재앙’, 곧 징크스가 선수들을 괴롭힌다. 성남 일화의 신태용은 누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영락없이 패하는 징크스가 있다. 신세대 골키퍼 김용대는 경기를 앞두고는 계란을 먹지 않는다. 깨질 게 두렵기 때문이다.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야할 감독들도 징크스가 많다. 울산 현대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고재욱 전 감독은 경기 전에는 악수를 하지 않는다. 이를 역이용하기 위해 상대 감독들이 악착같이 손을 내밀고 다가오면 고재욱 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을 쳤다. ‘붉은 악마’ 응원단조차 후반전에 우리 대표팀이 공격하는 방향에 자리잡아야 이긴다는 징크스가 있는 판이니 선수들은 더할 것이다.

결국 황선홍 얘기다. 황새라는 별명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우리의 간판. 12년 동안 수많은 감독이 교체되었지만 그의 자리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 해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 당시, 많은 선수를 온갖 방식으로 실험한 히딩크이지만 황선홍 만큼은 실전도 구경하지 않고 주전 공격수를 맡겼다. 미리 일본으로 건너갔던 코치진은 히딩크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우아하고 완벽한 선수’.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3월 유럽 전훈 핀란드전 당시 모두들 윤정환의 감각적인 스루 패스에 주목했지만 사실은 그 패스가 우리 수비 진영에서 볼을 가로채 윤정환과 리턴 패스를 주고 받으며 무려 70m 가량 적진 깊숙히 질주한 황선홍의 놀라운 공간 창조력의 개가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역시 징크스가 있다. 온 국민을 경악시킨 98년 중국 평가전. 그 악몽 이후 황선홍에게는 ‘큰 경기에 약하고 부상에 시달린다’ 이미지가 남아 있다. 이제 그것을 깰 차례다. 얼마 전 어깨 탈구 부상의 후유증이 남아있지만 우려할 만큼은 아니다. 지금부터 그의 몸은 아시아 최고의 감각과 예술성으로 빚은 골을 창조하기 위해 서서히 달아오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징크스부터 깨야 한다. 까짓, 알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정면으로 돌파해버리는 것이다. 아예 이번 주말 중국전에 출전하자. 물론 풀 타임을 뛸 필요는 없다. 역대 월드컵 골 중에서 기술 점수, 예술 점수 양면에서 가장 완벽한 골을 창조했던 우리의 황새는 그렇게 가볍게 몸을 풀면서, 운명의 잔디를 잠시 밟으면서 6월14일, 우승 후보 포르투갈에게 선사할 짜릿한 결승골을 상상하는 것이다. 완벽한 상상력으로 공간을 창조하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우아한 골을 작렬시키는 황새. 날아라, 황새여, 훨훨 날아 올라라.

축구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