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이 깃들인 따스한 내면의 성숙이 돋보인다’ ‘젊었을 때의 예민함 보다는 한층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대개 이런 수사(修辭)는 나이먹음에 따른 기교의 쇠퇴를 감추어주기 위한 ‘보호용 발언’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경화에게 이런 표현이 쓰일 때는 글자 그대로의 솔직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20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독주회에서 그는 불꽃같은 기교의 시마노프스키 ‘녹턴과 타란텔라’를 통해 이를 증명했다. 훨씬 원숙해진 루바토 (박자를 자유롭게 늦추고 당기는 것)와 활긋기 속도의 조절을 통해 그는 실로 다양한 표정의 음색을 쏟아놓고 있었다.
기대를 모은 브람스 소나타 1번은 예상보다, 또 EMI 음반을 통해 선보인 것 보다 한층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예의 원숙하게 숨을 고르는 루바토 덕에 서두른다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1악장 후반과 2악장, 활 속도를 늦춰가면서 여린 표정을 짓는 높은 음역의 표현은 고금의 어떤 음반에서도 듣기 힘든 것이었다.
한 세대를 무대에서 보낸 명인은 성숙한 무대매너에서도 1인자였다. 독감 유행의 뉴스가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열린 공연. 브람스 소나타의 1악장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약속처럼 참았던 기침이 터져나왔다. 그가 멈칫하다 ‘야 안타깝네요 정말’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과 몸짓을 지어보이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한층 더 따스한 분위기가 무대와 객석을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감쌌다.
이날 정경화는 폴디니 ‘춤추는 인형’을 필두로 여섯 곡이나 되는 앙코르를 쏟아냈다. 공연 후 사인을 기다리는 줄이 로비를 몇 겹으로 휘감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