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라는 경기는 묘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경기의 변수들이 투수의 투구와 타자의 타격이라는 대결구도에서 출발하지만 이런 개인경기적 속성이 투구 직후 곧바로 단체 경기로, 그것도 아주 유기적이고 지능적인 플레이로 연계되도록 되어 있다. 게다가 메이저리그의 경우 한시즌을 6개월여로 산정하고 162 게임씩이나 소화해야 한다. 프로스포츠 중에서 가장 긴 시즌과 게임을 치르는 속성상 강팀과 약팀의 차이가 분명함에도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발생하고 이 때문에 모든 결과는 한 치 앞을 예상치 못하게 혼전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대개의 시즌 전 전문가란 사람들의 예상을 참혹하게 뭉개버리는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도 개인적으로 벌써 4년째 시즌 예상을 적어서 인터넷에 공개해왔지만 늘 시즌 후 뒤돌아보면 부끄러움뿐이었습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마운드도 견고하고 타격도 좋아야 하고 리드오프도 건재하고 연승을 책임질 에이스도 있어야 한다. 더불어 주전 선수들이 한 시즌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어야 하며 부상 시 이를 대체할 선수들도 견실해야 한다. 이런 상황들이 여의치 않아 전력의 누수가 발생하면 팀종목으로 치뤄지는 프로스포츠들의 속성 중 가장 흥미로운 트레이드라는 거래를 통해 선수를 맞바꾸는 행위에 골몰하게 된다. 만약 100패 이상을 당하고 시즌을 망쳤다고 해도 실망할 것은 없다. 성적이 나쁘면 그에 상응하는 드래프트 혜택과 같은 여러가지 플러스 요인이 있어 앞날을 기약할 수 있다.
사실 프로스포츠는 긴장감과 예측불허의 대결구도가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흥행을 위해 라이벌은 전력상 대등한 플레이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야 하며 시즌 막판까지 각 지구 선두와 와일드 카드 후보 쟁탈전이 치열해야 한다. 보편적으로 리그 내 절대강자란 결국 흥행을 오히려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인식되기 쉽다. 따라서 대부분의 리그 운영 원칙들은 매년 전력 평준화를 위해 다양한 장치들을 제공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 상식을 초월하여 장구한 시간동안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하는 팀들이 있다. 모두가 인지하는 바처럼 뉴욕 양키스는 미국 야구의 심장이며 역사이다.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나라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구단이기에 몇 년을 월드시리즈를 독식해도 열기는 식지 않는다. 게다가 리빌딩(전력이 매우 강한 시점에 이르러 팀내 연봉이 너무 높아지면 선수들을 유망주들과 바꿔 몇 년간 성적이 좀 부진하더라도 젊고 페이롤이 가벼운 새로운 팀컬러로 바꾸어가는 과정)도 거의 시간을 두지 않고 어이없을 정도로 빠르게 스토브리그에 몽땅 이루어진다.
양키스에 비할 바는 아직 아니지만 이 같은 신화에 도전하는 팀들은 또 있다. 월드 시리즈와의 인연이 적어서 그렇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시삭스와 트윈스가 갑작스런 기대 이상의 성장을 해주기 전까지 중부지구의 심하다 싶을 정도의 강자였다. 숙적 레드삭스가 있었던 동부의 양키스보다도 더한 독주체제를 구축했다고 해야할 것이다. 올시즌 후안 곤잘레스와 로베르토 알로마를 내보낸 뒤 전력은 확실히 감소했지만 선두다툼에서 멀어진 정도는 아니다. 이미 그들에게는 무서운 관록이 쌓였다.
또 하나의 센세이셔널 팀은 시애틀 매리너스다. 사쿠라처럼 활짝 개화했다가 금새 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이 팀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그들의 최대 경쟁자 에이스도 무시할 수 없다.
내셔널 리그에도 동부의 브레이브스, 메츠, 중부의 카디널스, 애스트로스, 서부의 자이언츠, 디백스 등이 이변이 없는한 지구 수위를 다툴 만년 후보로 예약된 상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위 말하는 강팀들은 어떤 이유로 이 같은 전력을 항상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또 늘상 시즌 초 잠깐 주목을 끄는 엑스포스, 피츠버그, 신시내티 등과 같은 팀들과 무엇이 다를까? 왜 누구는 첫서리가 내릴 즈음 포스트시즌을 기약하게 되고 누구는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것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큰 영역을 차지하는 주제들을 분류해 차근히 접근해보고자 한다. (어차피 박찬호, 김병현 개점 휴업으로 열기가 조금은 식은 시즌 초이므로, 그리고 가능하면 메이저리그의 속성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도 알기 쉽게 풀어보고자 하니 조금 부언이 많아도 매니아께서는 양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l 시스템 System
l 운영 Maintenance
l 팀 네트워킹 Team Networking
l 거래 Transaction
l 장기계획 Master Plan
강팀의 10가지 법칙
야구는 결론적으로 집중력과 적응력의 경기이다. 강팀이 강할 수 밖에 없는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다.
1. 강자로서의 여유를 가지고 있어 대담하다.
2. 필승 카드로서의 에이스가 있다.
3. 4, 5선발이 강하거나 의외의 활약을 보여준다.
4. 1~9번까지 타선이 상하를 가리지 않고 찬스에 강하다.
5. 홈런왕이 없고 MVP가 있다.
6. 불펜의 에이스, 톱 유틸리티 플레이어 등 기막힌 전문보직 플레이어가 꼭 있다. 그게 아니라면 갑자기 미쳐주는 루키가 있다.
7. 라이벌전에 강하고 약팀들에게서 승수를 확실히 벌어둔다.
8. 경기 후반 집중력이 좋아 역전에 능하다.
9. 감정이 풍부한 감독과 생활한다.
10. 자기 색깔이 분명한 팀이다.
물론 모든 팀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팀을 구별하는 어느정도의 지표는 될 것이다. 이 모든 사항들은 팀의 컬러, 또는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현상들이며 쉽사리 형성되지도 쉽사리 파괴되지도 않는 강력한 정신적 에너지를 이루게 된다.
야구는 시스템이다.
프로야구의 속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동의할 사항이지만 전적으로 강팀과 약팀을 구별짓게 만드는 근본 문제는 시스템에 있다. 제 아무리 트레이드를 잘하고 좋은 선수를 비싼 몸값에 데려와도 팀의 시스템, 그 팀이 추구하는 야구의 시스템 자체가 틀렸다면 애당초 돈이 남아돌았냐는 비난 밖에 돌아올 것이 없다.
시스템은 시설과 같은 하드웨어적 속성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손쉽게 보아 메이저리그는 하부에 서브시스템들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를 통칭하여 마이너리그 또는 팜 시스템이라고 불린다. 요즘에는 이 같은 전통적 시스템에서 투자 대비 효과가 적다고 생각했는지 좀 더 구미가 당기는 오픈 마켓으로 눈을 돌려 해외 선수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아예 이를 정형화 시켜 한, 일 야구에 대해서는 협정까지 맺어 체계적인 시스템의 내부로 편입시키고 말았다.
주지의 사실처럼 마이너리그는 루키리그, A리그(상하위로 나뉜다), AA리그, AAA리그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메이저리그 팀들은 7개 정도씩의 마이너 팀들을 거느리고 있다. (마이너 팀의 현황은 http://mlb.mlb.com/NASApp/mlb/mlb/minorleagues/mlb_minorleagues_list.jsp 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들 마이너 팀들은 센터(메이저 구단)에서 직접 운영되기도 하지만 독립채산으로 운영되는 별도 법인인 경우도 많다. 이 경우 메이저 팀과 마이너 팀이 팀간 계약을 맺어 유망주들을 길러주고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강팀을 만드는 원인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이 팜 시스템의 건실함을 들어왔다. 팜 시스템을 잘 길러 대박을 친 경우가 바로 오클랜드 에이스이다. 오클랜드는 오랜 부진의 늪에 허덕일 때에도 팀내 유망주를 철저히 보호하고 엄격한 생존의 법칙을 적용시키기로 유명하다. 얼마전 텍사스로 넘어온 제이슨 하트의 경우 파워만 치자면 매년 빅리그에서도 30개를 넘길 준수한 슬러거감이었지만 선구안이 구단에서 제시하는 수준에 미달해 결국 오클랜드에서는 빅리그에 자리잡지 못하고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반면 내셔널 리그에서 팜 시스템에 유망주가 많기로 유명했던 팀 중 하나인 몬트리올 엑스포스는 팀의 급한 사정에 못이겨 자꾸만 유망주들을 팔아치웠고 심지어 기량미달인 선수들을 빅리그로 불러들여 성숙되지 못한 열매를 따버려 익지도 못하게 만드는 우를 반복해서 범하고 말았다. 이제는 누구도 엑스포스의 팜을 뛰어나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몬트리올에서 헛심만 쓰던 최고 유망주 밀튼 브래들리가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되자 곧바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것은 팜의 재원들이 유망하다는 것과 팜이 시스템적으로 훌륭하다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팜 시스템을 향상시키고 좋은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팀과 계약하는 것은 물론 센터의 팀 컬러에 대한 분명한 장기적 방침이 있어야 한다. 구장이 작은 사이즈라면 당연히 장타력을 중시하는 팜 육성이 이루어져야 하고 투수 구장이라면 당연히 투수력의 높이를 더 높여주어야 한다. 대표적으로 선구안과 컨택트, 파워를 동시에 요구하는 오클랜드 팜의 원칙과 철저한 수비력 중심의 미네소타 팜 시스템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마이너리그 팀이 우승하는 것과 메이저 팀의 미래는 적지않은 갭이 있다. 팀을 어떤 팀으로 만들건지에 대한 원칙이 세워져야 미래를 기약할 시스템의 밑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단장이라는 시스템 디자이너
이쯤되어 팬들은 이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에게로 관심을 쏟게 된다. 팀마다 약간의 권한과 의사결정 방식이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시스템 설계와 프레임 규모에서의 운영은 단장(GM)에게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메이저리그 경기에서는 팬들이 감독에 대한 관심을 쏟는 것 이상으로 양복차림의 엄격히 말해 사무직인 단장에게 관심을 더 쏟는 듯한 기이한 모습들을 보인다. 이것은 오랜 세월동안 검증된 단장의 역할이 팀이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임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단장은 보통 선수들보다 훨씬 적은 연봉을 받는다.(그래도 일반 샐러리맨보다는 크지만) 하지만 권한과 팀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고액연봉자보다도 절대적이다. 그것은 그들이 선수들의 이동(메이저 승격, 마이너 강등, 트레이드, 드래프트, 웨이버 등)을 결정하는 중대한 위치에 있고 현장 지휘자인 감독과 팀의 미래와 큰 전략을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항상 강팀의 뒤에는 두드러지던 소리없이 활약하던 무언가 남다른 단장이 있기 나름이다. 텍사스에서 팀의 변혁을 위해 명단장 중 하나인 존 하트를 데려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물론 모든 단장이 매번 그 기획력과 감각을 적중시키기는 것은 아니다. 한때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센세이셔너블한 단장이었던 케빈 말론은 몬트리올 같은 스몰마켓 팀에서는 천재적인 수완을 보였지만 LA와 같은 빅마켓에서는 완전히 그간의 업적이 순전히 운이었다는 비난을 받을만큼 치명적인 오명을 안고 물러나야 했다. 과거를 비추어 보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그는 1인 구단주 체제가 아니었던 LA에서 의사결정력이 느리고 잦은 의견 충돌을 발생시키는 팀내 시스템 속에서 연이어 허방만 짚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강팀에는 남다른 선견지명의 단장이 있지만 단장이 시스템을 향상시킬 수는 있어도 기존의 것을 변혁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발로 뛰는 시스템이 살아남는다.
앞서 말론의 예처럼 사무실에 앉아있는 단장은 실패한다. 그렇다고 한 사람이 모든 야구라는 시장을 뛰어다니면 온갖 일을 다 처리할 수는 없다. 때문에 전체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각급 마이너리그 운영진과 세계를 무대로 종횡사해하는 스카우터들이 더 중요한 손발일 수도 있다.
성공하는 팀에는 인디리그와 타팀의 마이너리그, 해외 시장, 더 나아가 이름없는 섬의 글러브도 없이 가난하게 자라 볼품없는 야구를 구사하는 어린 재목들까지 찾아보고 구별해낼 수 있는 눈을 가진 스카우터들이 여럿 있다. 또한 이들은 단장과 밀접하게 결탁되어 있고 선수를 보는 관점적 의견에서 공통적인 방향성을 보인다. 이러한 말초신경까지 살아있어야 성공하는 강팀이 된다고 미래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필드 시스템
팀이라는 큰 기업 시스템이 이와 같다면 필드에서 뛰는 진짜 상품들인 선수들과 그들을 조율하는 감독과 코칭 스탭들은 어떠한가?
우선 몇가지 제약을 생각해야 한다. 메이저리그 팀의 시즌 중 지정로스터는 25명이다. 9명 또는 10명이 기본적으로 경기에 나서지만 벤치멤버들과 여벌의 투수들을 포함한 적정 숫자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9월 이후 40인 확장 로스터로 늘어나며 유망주들에게 빅리그 데뷔의 기회를 부여하고 지친 선수들이 과도하게 무리하지 않게 만든다.) 25인 중 보통 투수는 11명 전후로 구성된다. 5명의 선발진과 5명의 불펜진(다시 롱릴리프, 셋업맨, 원포인트 릴리프 등으로 보직이 세분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무리 1명으로 구성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텍사스는 올해 13명의 투수로 시즌을 출발했다. 타선은 이미 지나치게 강하니 부족한 마운드의 높이를 물량공세로 메우겠다는 심산이었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빗나가버리고 말았다. 그 결과 내런 감독은 많은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야수진도 마찬가지다. 모든 팀에는 사정이 있기 마련이다. 카탈라노토처럼 타격은 준수하지만 수비가 대단히 불안한 선수들이 있고 레이 오도네스처럼 수비는 예술이지만 타격이 젬병인 선수들도 있다. 따라서 부상시 대체요원, 대수비, 대타, 대주자 등으로의 활용을 위해 보통 5~6명의 선수들이 벤치멤버로 팀의 위기를 막기 위해 대기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불펜투수나 벤치워머들 중에서도 현대야구에서는 롱릴리프와 셋업맨, 유틸리티 플레이어들이 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강팀들은 예외없이 좌우균형이 맞는 셋업맨들 갖추거나 왠만한 팀의 선발투수보다 구위가 좋은 롱릴리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내야 외야를 가리지 않고 팀의 구멍을 견실히 메우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도 반드시 존재하며 이들은 결정적 순간에 팀의 어떤 주전보다도 큰 역할을 해낸다.
그럼 이렇게 보직이 정해지면 그것으로 끝인가? 모든 포지션에는 절대적인 주전이 있는 반면 플래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경쟁체제도 존재한다. 플래툰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경우 경쟁에 붙여진 선수들의 성품부터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데릭 벨처럼 플래툰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방출당하는 선수마저 있으니 말이다.
또한 25인 로스터의 인원변동 또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적절한 시기의 마이너 강등, 메이저 승격, 부상자 등록 일정의 관리 등이 팀의 전체적 페이스를 좌우하기도 한다.
따라서 많은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로스터 변동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는 부상자 명단(DL)과 연관하여 매우 중요한 변수들이 되며 기대하던 유망주의 데뷔와 직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치 오늘의 봉중근처럼.
그리고 여기에는 신중한 원칙과 때를 놓치지 않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일상적인 로테이션이랄 수 있는 선발 5인 시스템과 불펜진이 보직 이동, 타선의 변경으로 인한 테이블 세터와 중심타자, 하위타선 등의 역할 변화 등은 이제 감독과 투수, 타격 코치 등의 몫이다. 그들은선수들의 매일 매일의 컨디션 상태와 정서적 상태까지 검토하고 살펴야 한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