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어느 일요일. 가와구치는 전철을 타고 런던으로 놀러 나왔다. 대영박물관을 둘러보고 거리도 산책했다.“영국에 왔으니까 축구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도 배우고 싶다.”
1월 5일 벌어진 잉글랜드 FA컵에서 4실점 한 것을 마지막으로 소속팀 포츠머츠의 벤치에도 앉지 못한 두달 반.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2군 연습에 몰두하며 인내의 날들을 보냈다. 여가시간에는 영어회화를 공부했다.
“일본에 있었다면 틀림없이 월드컵 열기에 들떠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몹시 괴로운 처지지만, 이런 고생은 언젠가 보상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즈오카의 시미즈시상고 시절 전국대회 제패, 애틀랜타 올림픽과 프랑스 월드컵 출전.
가와구치의 축구인생은 언제나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잉글랜드에서는 아니다. 경기전부터 분위기를 부추기는 미디어의 습성을 아는 만큼, 자신이 처한 고독한 환경을, 반대로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려 했다.
가와구치의 경력을 보면 그는 틀림없는 엘리트다. 그러나 좌절 모를것 같은 갸날픈 이미지가 항상 따라다녀 엘리트라는 어감을 없앤다.하지만 가와구치는 역경을 이겨내는 강한 정신력이 자신의 최대 무기라는 자부심이 있다.
트루시에 감독은 취임 초, 가와구치가 한때 잃었던 ‘넘버원 GK’자리를 나라사키 세이고(나고야)로 부터 빼앗아 돌려주었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브라질을 완봉한 것을 시작해 가와구치는 적이 강하면 강할 수록 빛을 발하는 특이한 재능이 있다.
3개월 가까운 실전 공백이 염려되던 3월 27일 폴란드전. 가와구치는 전후반 90분을 무실점으로 선방했다. “가와구치는 나 처럼 좋은 운을 타고났다.” 트루시에 감독의 찬사속에 수호신에 대한 신뢰가 묻어난다.
“나를 걱정하는 일본 팬들에게 괜찮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명하고 싶었다.”
1일, 감독이 바뀐 소속팀 엔트리에도 16경기만에 포함됐다. 오랜만에 피치에 등장한 카와구치의 후원자들은 열렬한 박수로 그를 맞이했다. “한계단씩 차근차근 오르고 있다는 느낌이 가슴에 와 닿았다.”
선발 복귀의 행운이 찾아왔다. 구단의 퇴출권고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일본 복귀 권유에도 끄떡 하지 않은 그에게서 곤경을 타파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친다. 그것이 내 삶의 방법이기에.”
빠른 판단과 민첩함으로 골문에 연연하지 않는 ‘공격적인 GK’상에, 인생관이 투영되고 있다.
▽가와구치 요시가츠는
A매치 52경기 출장.
75년 8월 15일 생.
시즈오카현 출신.
179cm, 78kg.
발군의 반사 신경 자랑하며, 투구 및 양발을 모두 이용하는 킥도 정확. 94년, 요코하마 입단.
2001년 10월, 잉글랜드 1부리그, 포츠머츠로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