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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8…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8)

입력 | 2002-04-25 17:59:00


유미리는 볕에 타 가무잡잡한 중년 여자인 무당의 얼굴에서 할아버지의 표정을 읽어내려 한다.

무당3 안 만나 큐큐 파파 안 만나는 게 좋아 니가 시집을 가면 니 아들은 그 사내를 애비라 여기게 될 거다 큐큐 파파 네 할매 큐큐 파파 안정희(安靜姬)는 일본에 살고 있나?

유미리 작년 2월에 돌아가셨어요.

무당3 아이고! 정말이가?

유미리 네, 정말이예요, 도쿄에 있는 병원에서….

무당3 일본사람처럼 꽃과 불로 장례를 치렀나?

유미리 화장했어요. 뼈는 할배의 아들 신호(信好)가 밀양 땅에 묻었고요. 할배 옆에다요.

무당3 나는 무덤 같은 데서 잠 안 잔다 큐큐 파파 뛰지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유미리 어디를 뛰는데요?

무당3 인기척 없는 밤길을 큐큐 파파 수천 리 밤길을 달리고 수만 리 밤길을 달려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밤이 새벽을 날려보내고 큐큐 파파 아침은 기도 속에서 끝이 났다 큐큐 파파 누군들 견딜 수 있겠나 영원한 밤을 달려야 하다니 큐큐 파파 나는 후회하고 있다

유미리 무엇을 후회하죠?

무당3 뭘 후회하냐고? 모든 게 다 후회스럽지(눈꼬리를 치켜올리고 분노를 드러내며) 나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냐?

유미리 나는 알고 싶어요. 왜 할배가 달리기를 그만두었는지, 왜 자기 나라와 가족을 버리고 혼자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왜 파친코점을 경영했는지, 왜 쉰여덟 살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왜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또 혼자서 귀국했는지, 왜 지켜보는 이 하나 없이 홀로 죽어야 했는지….

무당3 큐큐 파파 상처는 어둠에 입을 벌리고 큐큐 파파 아픔은 앞다투어 출구를 찾아 일제히 목소리가 된다 큐큐 파파 어둠에 메아리치는 목소리를 쓰거라 목소리가 바람을 먹어치우고 사라지기 전에 큐큐 파파 기록하거라

유미리 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무당3 왜 쓰느냐고? 큐큐 파파 그것은 너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쓰지 않으면 안된다

유미리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