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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칼럼]최민/이미지의 힘

입력 | 2002-04-25 18:18:00


본격적인 소비사회로 진입하게 됨에 따라 ‘이미지의 힘’을 누구나 절감한다. 수많은 광고 이미지, 쏟아지듯 퍼부어 대는 사진 영화 텔레비전 비디오 영상은 우리의 시청각을 현란하게 자극하고 사고와 상상을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미지가 과연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분명한 의식을 갖지 않은 채 우리는 매일매일 그 영향권 안에서 살고 있다. 고도의 기술 발전으로 나날이 확장되어 가는 미디어는 이 이미지의 힘을 극대화하고 있다.

▼광고 TV 그리고 이미지 조작▼

광고가 이미지 조작에 의해 그 효력을 낳고 있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판매와 소비의 영역에서 광고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커가고 있으며, 마케팅이라는 단어는 사회생활의 많은 부문에서 키워드가 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이미지로 장사하는 연예계만이 아니라, 정치판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이미지 관리’다.

한 정치가가 긍정적 이미지로 보이느냐 부정적 이미지로 보이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하고, 그의 정치적 판단이나 선택이 실제로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는 뒷전으로 빠진다.

이미지라는 것이 기억하고 상상하는, ‘머리 속에 있는 그림’에서부터 눈앞에 현존하는 구체적 대상까지 두루 통틀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논의하기는 쉽지 않다. ‘머리 속에 있는 그림’과 ‘눈앞에 있는 그림’ 사이에 불연속적인 단절은 없다. 그리고 단순히 시각적인 차원에만 머무르는 것도 아니다.

‘인상’이라는 단어는 그 경계가 모호한 이미지의 이같이 연속적이고 포괄적 측면, 그 전체적 양상을 잘 말해준다. ‘좋은 인상’ ‘나쁜 인상’이라는 말과 ‘긍정적 이미지’ ‘부정적 이미지’라는 말은 같은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인상’이 잘못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의심하기도 한다. 인상에 속아본 경험을 누구나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우리들의 견해나 태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인상’도 일종의 판단의 결과다.

다만 그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라기보다는 헤아리기 힘든 매우 신비스럽고 복잡한 지각작용 및 정신작용을 통해 형성되는 종합상(綜合像)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판단과는 동떨어진 것일 수 있다. 좋은 것이냐 싫은 것이냐, 호감을 더 주느냐 덜 주느냐 하는 선호의 문제가 비중을 크게 차지한다.

이미지에 대한 불신, 이미지에 대한 경계심이 이래서 생겨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미지에 번번이 당하고 만다. 그렇다고 이미지를 무조건 비이성적인 함정이고 덫이라고 배척할 수 없다. 그 감각적 매력이라는 것이 논리적인 사고가 미치지 않는 무의식적인 차원에서부터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제하기 힘들다.

물론 거기에만 머무는 것도 아니다. 아주 복잡한 논리도 간단한 도형으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 역시 일종의 이미지다.

이미지가 사회의 현실적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심정적으로 배척하려고 하거나 무시하려고 하는 것은 헛된 제스처일 뿐이다. “요즘 젊은애들은 책 읽기를 싫어하고 만화나 비디오, 영화 따위에만 빠져 있어서 큰일이야. 그러니까 논리적인 사고력이 뒤떨어질 수밖에”하는 투의 푸념을 흔히 듣는다. 따지고 보면 근거가 희박한 이야기다.

영상, 곧 이미지가 반드시 비논리적인 것도 아니고 ‘글’이나 ‘생각’과 분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지를 단순한 감각이라고 보는 것이나 글이 곧 사고(思考)라고 보는 것이나 단순하기는 매한가지다.

▼비판력 키울 미디어교육 절실▼

대부분의 이미지는 항상 글을 동반한다. 영상 또는 이미지는 ‘사고’와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의 필수적인 한 요소이며 그것 자체가 하나의 사고형태다. ‘시각적 사고’ 또는 ‘형상적 사고’ 라는 표현은 은유가 아니다.

요는 이미지와 좋은 관계, 생산적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지가 희소했던 과거로 되돌아갈 수도 없고 이미지의 매력에서 자유로워 질 수도 없다. 이미지와 전면적인 전쟁을 벌일 수도 없다. 이미지의 긍정적, 부정적 힘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능력을 길러가며 이미지와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이미지의 조작적 논리를 간파해 그것에 놀아나지 않고 소통과 표현의 방법으로 전유(專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절실하게 요청되는 미디어 교육은 바로 이를 핵심적 목표로 한다.

최 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영상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