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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의 대중음악 산책]박효신의 아성에 도전장 낸 ‘휘성’

입력 | 2002-04-26 17:17:00


약진중인 한국 ‘리듬 앤드 블루스’(R&B)계에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은 한 신인 보컬리스트가 막 이륙했다. 사실 한국 R&B의 계보는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60년대 말 신중현 사단의 김추자와 장현, 박인수 같은 별들의 시대에 태동해 R&B의 영향을 깊게 받은 조용필을 지나 90년대에 세계적인 R&B 붐과 더불어 폭발적으로 개화했다.

트리플 밀리언셀러의 주인공 조관우가 성인 여성 수용자들을 일거에 결집시켰고, 솔리드와 김조한이 한국 R&B에 미국적 스타일을 깊게 각인했으며, 새로운 세기의 개막과 더불어 박효신이라는 신예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박정현과 박화요비라는 R&B의 요정들도 지나칠 수 없다.

새 얼굴 휘성은 단 한 장의 데뷔앨범만으로 동시대의 박효신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스스로 증명한다. 이 음악 청년은 R&B가 요구하는 보컬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감정이입과 클라이맥스에서의 압도적인 파워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프닝으로부터 엔딩까지 물 흐르는 듯한 연속성을 보여준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R&B에선 무엇보다도 리듬을 본능적으로 조직하고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장르에서 리듬은 그저 음악에서의 시간을 재단하는 기준이 아니라 몸의 메시지다. 그와 동시에 블루스로부터 이어받은 풍부하고도 도발적인 보컬의 감정이입이라는 ‘어택’(attack)이 화룡점정의 엑스터시를 제시해야 한다. ‘봄비’를 부르던 1969년의 박인수에겐 마치 감전된 것과 같은 주술적인 흥분이 있었다. 비록 모든 것이 결핍된 시대였지만 말이다.

휘성의 톤은 요즘의 경향이 그러하듯 훨씬 안정적이고 세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현정이 주도하는 작곡가 진영 또한 이 장르의 컨셉트를 질서정연하게 통일시킨다. 이현정의 곡 ‘안 되나요’와 전승우의 ‘후애’를 베스트 트랙으로 꼽고 싶지만, 역설적으로 이 통일성은 이 앨범의 유일한 약점이 될 듯하다. 이 앨범은 시종 한 장르의 모범적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앨범의 후반부로 갈수록 놀라운 반전의 트랙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앨범이 책임질 것은 아니지만, 주류 문법으로 부상한 최근 한국 R&B 음악의 메시지가 천편일률적인 수준의 노랫말에 머무르고 있는 점도 눈에 거슬린다. 거칠더라도 좀더 진솔하고 좀더 공격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한국 대중음악의 저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신예의 신고 앨범이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authodox@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