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그림자처럼 따른 아난과 같이 성철 큰스님을 오랫동안 곁에서 모신 원택 스님의 시봉(侍奉) 이야기이라 이 책은 더욱 생생하다. 어른을 받들어 모신다는 ‘시봉’이란 단어도 그립고 눈물겹다. 인물평을 잘 안 하는 법정 스님도 성철 스님에게는 후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불멸의 수행자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엄격했던 분들이 아닐까. 돌아가시기 몇 해 전인가 스님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장(늘) 생각하는 쇠말뚝이 있는기라. 그것이 아직도 꽂혀 있고, 거기에 패가 하나 붙어 있어요. ‘영원한 진리를 위해 일체를 희생한다’라는 패인기라.”
소설가 최인호도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사면초가의 상태에서 가족과 함께 집을 비우고 피난 가듯 긴 여행을 떠났는데, 해남 어느 절에선가 ‘자기를 바로 봅시다’라는 성철 스님의 법문 구절을 보고 마음에 와 닿는 바가 있어 발길을 서울로 되돌렸다는 고백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그는 서재에 성철 스님의 사진을 붙여 놓고 지냈다고 한다.
‘성철 스님 시봉이야기’(원택 지음·김영사)를 읽고 있노라면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맞는 느낌이다. 원택 스님이 공양주 생활의 고달픔을 면하려고 떠나려 하자 공양할 때 돌을 씹어 치아가 상했다며 “내 이빨 값 내놔”라고 주저앉히는 장면 등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지만 어느새 종아리를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원택 스님이 양말을 기우고 있는 스님을 보고 잘 떨어지지 않는 나이론 양말을 권하자 “니는 우째 하는 말마다 내 귀를 짜증나게 하노. 이놈아! 나이롱 양말이 질긴 줄 몰라서 안 신는 줄 아나? 중이라면 기워 입고 살 줄 알아야제. 너거나 질긴 양말 신어라.”
형편 좀 나아졌다고 절약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요즘의 우리들 모습 아닌가. 그러나 또 이런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웃음보가 터진다. 인사차 방문한 어느 신임 주지에게 한 말이다. “아이구! 니가 다 주지가 됐나? 니 어릴 때 우리한테 보여주던 불알 옆에 검은 점 아직 있나?” 예를 갖춘 주지였겠지만 암자를 내려설 때는 권위고 뭐고 다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쓰레기통에 들어간 수박껍질을 백련암 스님과 신도들이 다시 꺼내 먹은 이야기도 가슴을 쓸어 내리게 한다. “너거 돈으로 사왔는지 모르지만 농부들 정성을 생각하고 먹어야 될 것인데 반도 안 먹고 버렸으니 기도하지 말고 싹 다 가든지, 아니면 쓰레기통에 껍질들을 다시 꺼내 먹든지 둘 중에 하나를 빨리 선택해라.”
성철 스님은 분명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다. ‘성철 스님 시봉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런 스승을 다시 친견할 수 있다는 것도 나에게는 정복(淨福)이 아닐 수 없다.
정찬주 소설가 chanjooj@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