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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짓는 집]기구한 전범 도고에게도 소중한 사람있었네

입력 | 2002-04-26 17:28:00


허영섭의 ‘조선총독부’를 보면 그 건물 청사를 기초 설계한 폴란드 출신 게오르그 드 라론드가 등장한다. 술주정뱅이 라론드가 1914년 요코하마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사람들은 경복궁의 지맥을 건드려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렇긴 해도 열다섯 살 아래의 젊은 아내와 5명의 아이를 두고 간 것은 좀 안타깝다. 그 젊은 아내는 어떻게 됐을까? 그런 궁금증 따위는 애당초 없었는데, 김정동의 ‘일본을 걷는다 2’를 읽다보니 이름이 에디였다는 그 여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하노버의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에디는 라론드가 죽자, 독일로 돌아갔다. 1920년 무렵, 에디는 도쿄제국대학 출신의 외교관 도고 시게노리를 만났다. 도고는 독일어를 잘하는 일본인이었고 미망인 에디는 일본을 잘 아는 독일인이었다. 둘은 1922년 도쿄의 제국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식이 오랫동안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은 까닭은 도고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 사쓰마로 강제 연행된 조선인 도공의 후예였기 때문이다. 도고 자신도 네 살 때까지만 해도 박무덕이라는 조선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전통을 지켜온 집안이었다.

도고는 1945년 종전 내각에서 외무대신으로 활동한 전력 때문에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금고 20년형을 언도 받은 뒤, 1950년 미 육군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조선인 출신으로 일제의 종전 협상에 나선 A급 전범이라는 사실 때문에 도고는 그간 국내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 1999년 KBS와 NHK는 8·15 특집 다큐멘터리로 그를 다룬 바 있고 이 내용은 정수웅의 ‘일본 역사를 바꾼 조선인’이란 책으로 묶였다. 또 이 방송이 계기가 돼 도고의 회고록 ‘격동의 세계사를 말한다’도 국내에 번역됐다.

도고에게 조선은 어떤 의미였을까? 눈을 비비며 회고록을 읽었지만, 조선은 카이로선언의 한 구절에 등장하는 식민지에 불과했다. 스가모 형무소 복역 중 작성한 회고록에는 굵직한 얘기뿐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노몬한 사건, 대미 선전포고, 1억 옥쇄 등등. 아버지를 따라 극동에 와 폴란드 건축기사와 결혼했던 여자, 남편이 죽은 뒤 독일에서 일본인과 재혼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독일인 에디의 얘기를 더 알고 싶었으나 회고록에 그런 얘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세상의 그 모든 야스쿠니신사나 충혼탑 같은 것을 나는 싫어한다. 거기에는 국가만 있고 개인은 없기 때문이다. 도고의 회고록 역시 그와 비슷했다. 도고는 천황과 국체의 보존을 위해 종전협상에 임했다고 회고했지만, 정말 그럴까? A급 전범답게 그의 가슴속에는 오직 일본과 천황뿐이었을까? 그런 점에서 평화주의자였던 도고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 ‘에디가 있어 양심이 이끄는 대로 행동할 수 있었다’고 쓴 것만은 참 다행이다. 세상에는 야스쿠니신사보다, 천황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도고가 다시 회고록을 쓴다면 그 내용의 절반은 아버지 박수승과 에디와 아이들 얘기로 채워지지 않을까.

김연수 소설가 larvatus@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