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50년사’에는 경찰이 독재정권의 사병 노릇을 하던 시절에 저지른 숱한 잘못에 대한 반성의 빛을 찾아보기 어렵다. 1972년 유신 이후 87년 6월 항쟁까지 경찰은 독재정권의 충직한 도구로 숱한 인권유린 행위를 저질렀다.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 집권 시기에 경찰이 자행한 대표적인 인권유린 행위가 박종철(朴鍾哲)씨 고문치사와 권인숙(權仁淑)씨 성고문이다.
경찰은 수배자 소재 수사를 위해 불법으로 연행해온 박종철씨를 욕조에 처박고 물고문을 하다 죽였다. 경찰이 박씨 사건을 기록하면서 ‘신문 등 매스컴이 경쟁적으로 대서특필해 여론이 악화됐다’고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마치 경찰은 큰 잘못이 없었는데 신문이 과잉 보도해 문제가 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부천경찰서 조사실에서 경찰관이 여대생 권인숙씨를 조사하면서 추악한 성고문을 했던 사건에 대해서도 경찰은 권씨가 언론에 폭로함으로써 발생한 사건이라고 기술했다. 이 사건은 권씨가 처음부터 언론에 폭로했던 것이 아니고 고 조영래(趙英來) 변호사 등 변호인단에 알림으로써 진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치심을 이겨내고 추악한 성고문을 폭로했던 권씨는 미국 사우스플로리다주립대학에서 여성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권 교수가 경찰의 진상 왜곡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경찰이 반성의 말 한마디 없이 역사를 왜곡한 것은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유신통치와 5공화국 기간에 당한 의문사 유가족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활동하고 있는 마당에 과거 잘못을 덮으려는 목적의 경찰사 기술은 또 다른 왜곡 은폐 행위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모든 시위가 불법이었다’고 변명했다지만 그렇다면 모든 추악하고 잔인한 고문행위가 합법이었는지 묻고 싶다. 육법전서 어디를 펼쳐봐도 이근안씨 같은 경찰관이 전기고문을 해도 괜찮다는 조항은 없다. 경찰은 민주화운동을 왜곡한 역사 기술을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