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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웃음의 멋-맛-뜻 제대로 알기 '해학형성의 이론'

입력 | 2002-04-26 18:25:00


해학 형성의 이론/이상근 지음/623쪽 3만원 경인문화사

연두 빛 신록의 향기가 그윽한 계절이다.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고 목련이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던 봄의 향취에서 벗어나 싱그러운 신록을 스치는 훈풍에 움츠려 왔던 기분이 활짝 펼쳐지고 가슴이 훤하게 트인다. 이런 싱그러운 계절에 근교나 산에 올라 철축과 연산홍이 어울리고 모란이 활짝 피는 그 속에 묻히니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스치고 삶의 생기가 돋는다.

이런 호시절에 해학의 형성 이론을 집대성하고 해학 형성의 조건과 기법, 해학의 기능을 체계화한 책이 상재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저자는 철학과 미학을 주로 참고하고 심리학, 역사, 경영학 등도 참조했다. 아울러 누구나 출세하고 성공하고 싶은 세상에서 출세한 사람들의 해학에 관한 일화도 책에 풍부하게 담았다.

해학은 골계, 풍자, 유머 등 그 범위가 넓으나 사람을 웃게 하여 편안하게 만든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웃음이 있는 곳에 즐거움이 있고 생활의 희로애락이 뒹군다. 가파르고 어지러운 이 세상에서 웃으며 살아 갈 수 있는 것은 복된 일이다. ‘웃는 집에 만복이 들어온다(笑門萬福來·소문만복래)’고 했으니 웃고 사는 것은 스스로 복을 부르는 것이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는 말도 웃음이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웃음이 없는데 집안이 화목할 수가 없고, 웃음이 없는데 만사가 쉽게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웃고 살 수 없는 데 문제가 있다. 가파르고 험한 이 세상이 웃으며 살 수 있게 편안하게 놓아두지를 않는다. 여러 가지 부조리나 메커니즘이 가는 길을 막고 이루고 싶은 일을 방해한다. 이로 인해 갈등과 좌절 속에서 세상을 방황하게 된다. 이루고 싶은 일과 그것을 가로막는 많은 부조리가 충돌하며 복잡한 관계 속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게 된다. 여기에 웃음이 나올 수가 없다. 웃음 대신 얼굴이 찌푸려지고 자기 비하의 심정에 빠지게 된다. 이 때 해학에 의한 부정과 긍정의 웃음이 이 어려움을 극복하게 한다.

‘하회 별신 굿 놀이’, ‘양주별상대 놀이’, ‘오광대 놀이’ 등 가면극을 보면 해학의 풍성함을 볼 수 있다. 이런 해학의 연구는 대부분 채록과 작품 연구에 치중하여 그 이론적 정립이 절실하다. 그런데 저자의 이 책은 바로 이 해학 형성의 이론과 그 조건과 기법을 통해 복잡한 현대의 일상생활에서 해학이 가지는 기능과 그 실용방안에 대해 평이하게 접근하고 있다.

해학에 대해서는 송석하 선생의 한국 민속, 정병욱 교수의 해학의 미적 범주, 임석재 이두현 교수의 가면극, 최래옥 교수의 전래 동화 동시에 나타난 해학, 조동일 교수의 탈춤의 미학적 추구, 신윤상 선생의 해학의 미학과 민속적 접근 등 적잖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번 이상근 박사의 이 저서와 같이 해학의 이론을 집대성한 경우는 없었다. 지칠 줄 모르는 연구열로 해학의 신비를 철학, 심리학, 미학 등의 측면에서 접근하여 이론화하고, 풍부한 예를 들어 이해를 돕고 또 실용할 수 있게 하고 있는 데 이 저서의 의미가 있다.

저자는 특히 일반적인 미의 개념과 미학자들의 미의 개념, 웃음에 관한 기원과 제 견해 등을 탐구하여 해학의 형성 배경을 추구했다. 또한 해학의 대상, 미적 가치와 미적 상상, 공격자와 방어자를 통한 해학 형성의 이론을 정립하고 해학의 개념과 미적 범주, 이원성,운동·변화, 인간을 통한 해학의 성격을 규명해서 그 이론을 정립하고 있는 것이 돋보인다.

한편 신선할 것, 청중의 수준에 맞아야 할 것, 자신이 먼저 웃지 말 것,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것, 헤아림 없는 해학은 하지 말 것, 이해가 쉽도록 표현할 것, 고유한 지식이나 정보를 설정할 것, 격조 높은 해학을 창조할 것, 짧은 이야기로 해학을 할 것, 여유 있는 생활을 할 것, 인격함양에 힘쓸 것, 가급적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할 것 등 저자가 제시한 해학 형성의 조건은 현대인의 일상생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성도 지니고 있다.

나아가 연구와 개발의 자세, 경청(傾聽), 독특한 표정과 몸짓, 독서 등의 거시적 방법과 인식론적 차원, 천성 본능적 차원, 초월적 차원 등의 미시적 방법으로 해학 형성의 배경을 밝혔다. 동서양 해학의 차이, 신라 고려조선 근·현대에 걸친 해학의 통시적인 특색도 밝히고 한과 민족 정서, 초월성, 관용, 소박성과 인고성, 동화 등 한국의 해학의 특성을 밝혀 해학 형성의 한계도 드러냈다. 학습의 수사 효과의 증진, 국면전환과 관리의 효율, 작품 생산과 광고의 효과, 임상 치료, 인격도야와 지도력 발휘 등 인공적 미적 심상과 자연적 미적 심상의 문제해결의 역할과 해학증후군, 역사의 역할 요약 등 해학의 기능도 설명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단편적 연구로 산일(散逸)된 해학 형성 이론을 정립함으로써 일상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예를 풍부히 들고 있다. 이 저서가 이론적 접근만이 아니고 실용적으로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그 활용의 폭이 넓은 것을 알 수 있다.

해학은 우리 삶의 윤활유요 친화력이다. 해학은 심각한 것을 심각하지 않게 표현하면서 우리 생활을 고양시킬 때 그 효과가 배가된다. 사실 해학은 미적 범주로 보면 골계 풍자 유머와 겹치면서 하나로 흡수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물론이요,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도 읽을 만하다. 시간에 쫓기고 일에 시달려 고달픈 현대인에게 이 책은 웃음을 선사하고 생활을 활기 있고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또 정보사회의 디지털 홍수 시대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웃으며 살기 위해 도움이 된다. 또한 자매편으로 함께 발간된 ‘유머리스트가 되는 길’(경인문화사)도 쉽고 평이하게 해학에 접근하는 안내서가 될 것이다.

구인환 서울대 명예교수·소설가

문학과문학교육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