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의 매력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맑고 선명한 색깔, 단아하고 유려한 선의 흐름, 탄력 있고 생동감 있는 형태, 시적 운치가 있는 문양…. 그런 것들이 모두 더해져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딱 한가지만 꼽으라면 마치 투명하게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은은한 비취색일 것이다. 후대 사람들이 이 색깔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성공한 경우가 없다. 전문가들도 아무리 엄밀한 고증과 현대과학을 동원해도 100% 이를 재현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고려청자는 고려시대(918∼1392) 중기인 12세기에 제작이 가장 왕성했고 수준도 가장 뛰어났다. 12세기는 고려 문화의 황금기였고 사치와 향락이 넘친 귀족사회의 절정기이기도 했다. 이 시기 들어 청자도 중국적인 느낌에서 벗어나 고려 특유의 독특한 형태로 자리잡았고 미적 기술적 수준도 최고에 이른 것이다. 당시 가장 활발하게 청자를 생산하던 곳은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의 바닷가. 이곳에서 만들어진 청자들이 배를 통해 개경(지금의 개성)으로 옮겨져 왕실 관청 귀족집에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군산 비안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수백점의 고려청자들이 바로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부안에서 개경으로 옮기다 침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성기 명품이라 그런지 건져 올린 청자의 색깔들이 참으로 눈부시다. 지금까지 10여차례의 고려청자 해저발굴사상 가장 뛰어난 수준이라고 하니 문화재관계자들이 흥분할 만하다. 더욱이 이번에 발견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이 해역 일대에 엄청난 양의 고려청자가 묻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우선은 도굴꾼들의 접근을 막고 발굴작업에 차질이 없도록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당시 청자를 운반하던 배도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장기적으로는 현지에 고려청자박물관을 세우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이들 청자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어부들이다. 소라를 따러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갔다가 색다른 그릇더미를 발견하고 군청에 신고한 것인데 유물평가액의 절반을 보상금으로 받는다고 한다. 아마도 이들에겐 가난을 면케 해 줄 엄청난 액수가 될 것 같다. 욕심부리지 않고 생업에 충실하다 바다 속에서 ‘심봤다’를 외친 셈이다. 신안 앞바다의 보물을 캐내려고 권력에 줄을 대는 등 욕심을 부렸던 이용호(李容湖)게이트 관련 인사들이 먼저 알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