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화인류학자의 보고서. 남태평양 어느 섬에 서식하는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정보의 수용과 유통 채널을 살펴보았다. 모래에 섞인 열매를 하나 하나 가려먹는 원숭이들 앞에서, 열매가 포함된 한 웅큼의 모래를 손으로 떠서 물에 모래를 가라앉혀 보다 손쉽고 효율적으로 열매를 골라낼 수 있는 방법을 시범으로 보인 뒤 이 새로운 기술 정보가 어떤 경로로 전파되는지를 관찰했다. 젊은 암컷 원숭이가 가장 먼저 신기술을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그 원숭이의 친구, 젊은 수컷 원숭이, 엄마 원숭이의 순서로 신기술이 보급되어 갔다. 하지만 끝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재래식 방식으로 열매를 골라 먹는 것은 늙은 수컷 원숭이들이었다고 한다.
▼젊은 암컷의 역동성▼
이 보고서는 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일종의 프리즘 역할을 해준다. 젊은 암컷 원숭이로 대변되는 사회의 역동성과, 늙은 수컷 원숭이로 대변되는 보수성이 그것이다. 역동성과 보수성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그 사회는 이상적이겠지만, 그러한 완전한 평형을 이루고 있는 사회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어느 쪽에든 쏠려 있게 마련이고, 또 다른 평형을 이루기 위해 사회는 부단히 움직여 나간다.
기원전 6세기 경 인도 사회. 집을 떠나 숲에서 생활하며 걸식으로 연명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생겨나게 된다. 슈라마나(sramana·沙門)라 통칭되는 이 젊은이들은 혼자서 혹은 소그룹으로 생활하면서 당시 인도 사회의 전통적인 바라문 사상에 따르지 않고 나름대로의 새로운 진리를 추구하며 수행했다. 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당시 인도 사회의 제식문화(祭式文化)에 대항하는 반문화(反文化·subculture)가 형성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점에서 슈라마나들은 1960년대 미국 버클리대학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히피운동에 비유되기도 한다.
싯다르타는 35세에 ‘깨친 자’, 즉 붓다가 되었다. 붓다의 가르침은 새로운 것이었고 그 새로운 것에 귀 기울였던 선남선녀가 당시의 ‘젊은이들’이었다.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인 ‘지혜’는 흔히 요즘 영어의 ‘wisdom’으로 이해되는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는 노인의 지혜’가 아니라 다이아몬드도 쪼개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의미했다. 당시 불교는 젊은이들의 젊은 종교였던 것이다.
2002년 대한민국. 14년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두 달 조금 지난 지금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왜 왔니?”이다. 다들 못 나가고, 못 보내서 안달인데 중학교 다니는 애들까지 끌고 왜 들어왔느냐는 말이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한국이 얼마나 역동적인 사회인지 잘 모른다. 미국이 기회의 나라라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것은 50년대나 60, 70년대의 이야기다. 문화적 의미에서 미국은 이미 장년도 지나 노년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나라다. 그래서 안정되고 원숙한 면은 있어도 청장년의 역동성은 이미 찾아보기 어렵다.
난 젊게 살려고 한국에 왔다. 한국은, 때로 혼란으로 느껴질 만큼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사회다. 그러나 최근 50∼60년 간의 큰 흐름으로 볼 때, 여전히 기회의 나라이고 젊고 역동적인 사회다. 한국의 역동성은 ‘젊은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원숭이 사회와 인간 사회가 다른 것은 역동성이 반드시 생물학적인 남녀노소의 차이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젊은 여자 중에도 ‘늙은 수컷 원숭이’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어도 ‘젊은 암컷 원숭이’ 같은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정년퇴임 후에도 여전히 후학들과 모여 공부하고 이전까지 해오던 연구를 계속하는 ‘젊은’ 선배교수들을 보았고, 외환위기 이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다시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는 친구도 보았다. 한결같이 젊은 한국의 ‘젊은이’들이었다.
▼새로운 감성이 한국의 미래▼
미국의 철학자 마르쿠제는 1960년대 미국과 유럽의 젊은이들을 가리켜 현대사회의 전환을 위한 ‘새로운 감성’이라고 불렀다. 비슷한 시기인 1960년대 한국에서는 ‘새로운 감성’이 4·19혁명으로 나타났고, 이는 그후 한국사회 각 분야에서 세대를 거쳐 이어져왔다.
그런데 이 젊은 한국에서 ‘늙은 수컷 원숭이’들의 합창소리를 가끔 듣는다. ‘늙은 수컷원숭이’들의 레퍼토리는 다양하기도 하다. 젊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조기유학에 관한 법안’보다는 이런 특별법은 어떨까. ‘늙은 수컷 원숭이들의 이민에 관한 특별법.’
조성택 고려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