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가에서 축구의 기본기를 배우고 있는 브라질 어린이들.
‘독일전차’ 로타르 마테우스는 96년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한 뒤 “우리는 비록 우승했지만 전술적으로는 이탈리아보다 10년이나 뒤떨어져 있다”고 혹평했다.
상대 수비 뒤 빈공간에 툭 떨어뜨리는 긴 패스, 체력과 스피드를 앞세운 돌파와 센터링, 압도적인 키와 체격을 이용한 헤딩슛…. 독일의 플레이는 군더더기 하나 없는, 골을 넣는데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이지만 ‘축구 황제’ 펠레가 명명한 축구의 또다른 이름 ‘아름다운 게임(beautiful game)’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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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대축구의 미학은 빈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다. 리듬감 넘치는 공간 침투, 스루 패스, 볼을 주고 받는 환상 테크닉은 그 필요충분조건이다. 하지만 독일이 동원하는 방법은스피드를 살려 뒷 공간에 대충 차넣는 긴 패스, 스태미너와 지구력 뿐이다.
베켄바워 이후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독일축구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15일 독일 도르트문트 베스트팔렌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의 2002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은 4골을 모두 이 고전적인 방식으로 따냈다.
독일축구가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전설의 득점왕 게르트 뮐러가 이끌던 1970년대만 해도 대표팀엔 테크니션이 즐비했다.
당시 선수들의 공통점은 뒷골목과 마을 공터에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뮐러만 해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11월 패전 서독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용접공으로 일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축구 기술을 익혀 나갔다. 컴퓨터도 없고 돈도 없고 TV조차 없었기에 볼에만 매달릴 수 있었고 상상력만으로 볼을 마스터해 나간 것이다.
빈민가의 뒷골목에서 축구를 배워 ‘축구 황제’에 등극한 펠레(왼쪽)가 드리블하고 있는 모습.동아일보 자료사진
독일이 이기되 ‘재미없는 승부’의 길로 들어선 것은 70년대 후반 정부 정책으로 추진된 ‘골든 플랜’에 따라 선수들이 클럽과 학교에서 만들어지면서 부터다. 이후 선수들의 플레이에선 상상력과 창조력이 퇴색했고 대신 교과서적이고 직선적인 승부욕이 자리를 차지했다. 승부에 목을 맨 한국 학원축구의 원조격이었던 셈이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독일뿐 아니다. 1950년대 ‘창조축구’의 대명사로 통했던 헝가리도 길거리에 자동차가 넘쳐나면서 그 위용을 잃었고 ‘삼바축구’ 브라질마저도 지난해 ‘승부사’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테크니션이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는 일찌감치 ‘킥 앤드 러시’의 함정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킥 앤드 러시’는 2차대전후 퇴역 공군 장군 립이 ‘대부분의 골은 롱 패스, 즉 킥에 이은 전력 질주에 의해 기록된다’는 논문을 발표한후 잉글랜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인 찰스 휴스에 의해 확고한 전통으로 굳어졌다. 잉글랜드대표팀은 이를 바탕으로 60년대 유럽 축구를 제패했지만 이후 축구의 매력도 잃어버리고 성적도 못내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21세기 축구는 더 빠르고 더 화끈해졌지만 영웅과 신화를 잃어가고 있다. 모스크바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13세때부터 공장에서 일했던 전설의 골키퍼 야신, 야채상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요한 크루이프,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보비 찰튼, 구두닦이 펠레가 축구를 배웠던 길거리가 도시화, 산업화의 물결 속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