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제1회 우루과이월드컵 4강전 미국-아르헨티나전때의 일이다. 아르헨티나 선수가 미국 선수를 고의로 걷어차 쓰러뜨렸는데도 주심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미국팀 벤치에서 누군가 뛰쳐나와 전속력으로 그라운드를 질주하더니 주심에게 달려가 삿대질을 해대며 거칠게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감독도 코치도 아닌 팀닥터 레이놀즈였다. 그는 주심을 혼내다 흥분한 나머지 구급약 상자를 내동댕이쳤다. 갖가지 약병이 경기장내에 흩어지면서 박살이 났는데 이중에는 무색 휘발성마취제인 클로로포름이 들어있어 선수들은 물론 경기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코를 싸쥐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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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놀즈의 이날 행동은 주제넘은 과잉행동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소속팀의 승리에 애착을 갖고있었으면 이런 행동을 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 나라의 대표팀은 물론 선수가 중심이지만 여러 분야에서 대표팀을 지원하는 ‘보이지 않은 손’이 있다.
한국대표팀 주무인 김대업 대리(대한축구협회 경기국 직원)는 최근 대표선수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실험용’으로 기꺼이 내놓았다.
축구협회는 그동안 여러 단체에서 인삼을 비롯해 동충하초, 민물장어 엑기스, 가시오가피 등 보약재를 제공받았다. 대표선수들의 체력 보강을 위해 제공된 것으로 그냥 먹으면 될 수도 있는 것. 하지만 문제는 도핑테스트였다. 보약에 금지약물 성분이 있을까봐 대표선수들이 복용하기 전에 실험대상이 필요하자 김 대리가 자원을 한 것. 언뜻 생각하면 보약도 먹고 좋을 것 같지만 사실 김 대리 입장에서 보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관계기관의 정밀 검사 끝에 실험은 필요없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대표팀을 위해 몸바치겠다는 그의 의지에 선수들 모두가 숙연해 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손’이 어찌 김 대리 뿐이랴. 팀닥터, 물리치료사, 통역 등 수십명의 보조요원 덕분에 최상의 조건에서 훈련하고 있다는 것을 선수들이 얼마나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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