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40도를 밑도는, 언 강 위로 자동차가 다니는 알래스카. 수도 앵커리지에서 북서쪽으로 200㎞ 떨어진 소도시 배텔에는 유독 중년의 한국 남자들이 많다. 미국 교포들이면서 상당수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로, 미국 정부가 알래스카 정착민에게 지급하는 ‘정착 보조금’을 받으며 재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KBS1 ‘한민족리포트-알래스카의 택시운전사’(밤 12시)에서는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아내와 자식과 다시 함께 살 날을 꿈꾸는 이들, 자칭 ‘실패한 인생들’을 만났다.
‘미스터 정’이라고 소개한 정씨(40)는 2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조그만 식당을 개업했다가 장사가 되지 않아 문을 닫은 뒤 알래스카로 왔다. “돈 많이 벌어서 다시 만나자”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아내와 두 딸을 한국으로 보냈다. 자신은 알래스카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그는 지금도 공항쪽은 쳐다보지 않는다. “여기서 마저 돌아서면 ‘확실하게’ 실패한 웃음거리 인생이 될까봐”가 그 이유. 택시 운전으로 버는 수입에 미국 정부 보조금을 더해 딱 먹을 것만 남기고 두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를 넉넉히 보내준다.
모텔을 경영하는 피터최씨(50)도 19여년전 정씨와 비슷한 이유로 이 곳에 왔다. 10여년간 고생 끝에 가족에게 4억원을 보냈다. ‘이제는 같이 살아야지’하며 93년 한국을 찾았으나 너무 오랜만에 찾은 고향은 오히려 타향처럼 느껴졌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제2의 고향’이 된 알래스카로 다시 돌아갔다.
제작진은 “스스로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이들에게 실패자라고 손가락질 할 수 없는 처절한 현장을 보고 왔다”고 말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