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만화 시장은 크게 유럽 만화와 미국 만화 동아시아 만화로 삼분된다. 이 중 미국 만화는 신문에 실리는 연재만화인 코믹스트립스(피너츠, 블론디 등), DC나 마블의 주류 만화, 잡지 ‘매드’나 로버트 크럼, 아트 슈피겔만 등의 작가로 유명한 언더그라운드 만화로 다시 나뉜다. 이 중 1950년대부터 우리나라 신문에 소개되었던 몇몇 코믹스트립스를 제외하면 미국 만화는 우리에게 낯설다.
존 휴즈의 ‘아버지와 나’(Heavy Snow)도 낯선 미국 만화다. 게다가 코믹스트립스도 주류 만화도 아닌 화가이자 애니메이터, 영화학 강사인 저자의 작품이다.
‘아버지와 나’는 우리에게 친숙한 만화적 작화나 연출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만화적 작화나 연출이 반복 체험을 통해 축적된 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아버지와 나’와 같은 만화도 반복 체험을 통해 만화적 재미를 맛볼 수 있다.
2001년 6월 책을 구입한 뒤 두 번 정도 꺼내 읽었지만 큰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눈 내리는 날, 아버지의 발자국이 희미해졌을 때, 오랜만에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는 표지의 인용문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충분히 담고 있으나, 낯선 스타일은 편안한 독해를 막았고 감동의 통로를 차단했다. 그러나 이해 못한 아쉬움을 달래듯 가끔 꺼내 읽은 ‘아버지와 나’는 어느 날 나의 마음과 공명에 성공했다.
보수적인 루터파 목사이자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아버지와 진보적인 화가 아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끊임없이 부딪히며 충돌한다. 결국 얼굴을 맞대는 일조차 없을 정도로 아버지와 아들의 사이는 멀어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 아버지는 70세때 치매에 걸린다. 그 때부터 더 큰 고난이 시작되었다. 서로 싸우고, 괴로워하는 아버지와 아들. 하지만 아들은 힘없이 늙어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연민을 느끼고, 어느덧 예전의 아버지가 자신을 돌봐주었듯이 자신이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끔 기억의 끈이 이어질 때, 난폭한 아버지 대신 약하고 상냥한 늙은 어린아이가 있었고, 아버지는 자신의 쇠퇴하는 기억 속에 사라지고 있음을 고백한다.
권위적이고 강하지만 알고 보면 약한 아버지. 늙어 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하고, 또한 늙은 내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이주향 감독의 ‘집으로…’가 우리에게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재생시키듯, ‘아버지와 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 깊은 곳에서 끄집어낸다. 아버지….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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