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주 영화제 개막작인 ‘케이티’는 1973년 일본 도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김대중 납치 사건’을 소재로 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한일합작 영화. 원작은 같은 사건을 소재로 한 나카조노 에이스케의 소설 ‘납치’다.
그러나 영화 도입부 자막에서 ‘김대중역-최일화’가 4번째로 등장하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김대중이 아니다. 사카모토 감독은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도록 가해자의 시각에서 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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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한국대사관 공사 김준권(김병세)은 상부로부터 명령을 받고 한국중앙정보부(KCIA) 요원인 김차운(김갑수)을 시켜 일본에 체류중인 김대중을 암살을 꾀하는 ‘KT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일본 자위대의 부활을 꿈꾸는 토미타(사토 코이치)소령은 박정희대통령과 일본 육사 동기인 상부의 명령을 받고 KCIA를 도와 납치 사건에 개입한다
여기에 북한 공작원과 내통하는 한국 여대생, 그녀와 사랑에 빠진 토미타 소령,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김대중의 보디 가드인 재일동포 2세, 김대중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키는 한물간 일간지 기자 등의 이야기가 엮어진다.
그러나 긴장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캐릭터를 등장시켰음에도 영화는 건조하다. ‘김대중 납치 사건’은 당사자의 삶과 한국 정치사에서는 큰 획을 그을 만한 사건이었지만, 적어도 한국의 영화 관객에게 영화 ‘케이티’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케이티’가 올해 베를린 국제 영화제 본선 진출작이라는 사실도 영화제 진출작과 일반 관객들의 거리를 새삼 느끼게 한다. 제목 ‘케이티(KT)’는 프로젝트명 ‘Killing the Target’의 약자. 5월 3일 개봉. 15세 이상.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