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엔 만약이 없다지만 프로야구 선수의 연봉과 관련된 몇가지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해 본다.
먼저 선동렬과 관련된 생각. 그는 입단 후 6년만인 91년이 돼서야 억대 연봉(1억500만원)을 만질 수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1억원은 1군 주전선수가 불만을 가질 지극히 소박한 연봉. 그러나 당시 선동렬의 억대 연봉 돌파는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톱 뉴스였다. 이를 거꾸로 해석하면 선동렬이란 국보급 투수가 없었다면 국내에 억대 연봉이 도입되는 시기가 5년은 늦춰졌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또 하나. 선동렬이 96년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선동렬 개인으로선 당분간 깨지지 않을 통산 200승 정도는 가볍게 올렸겠지만 선수의 몸값 프리미엄에 기폭제가 된 자유계약선수(FA) 제도는 그가 현역으로 뛰는 한 도입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박찬호와 관련된 가설도 재미있다. 누군가는 공만 빨랐던 박찬호가 국내 구단에 입단했더라면 그저 10승 정도 올리는 평범한 투수가 됐을 거라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말이다. 하지만 박찬호는 94년 선동렬의 눈을 뒤집히게(?) 만든 120만달러의 계약금을 받았고 올해부터는 5년간 해마다 국내선수의 전체 연봉과 맞먹는 1400만달러 이상의 고액소득을 올리며 국내 선수의 연봉 동반 상승을 부추겼다.
서론이 길어진 이유는 지난주 화두였던 LG의 ‘돌아온 야생마’ 이상훈이 받은 사상 최고연봉 4억7000만원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이는 선동렬이 국내에서 활약한 11년치 연봉 총액과 비슷한 액수. 많이 받는 게 나쁠 거야 없지만 과연 적정 금액이었을까. 사실 국내선수의 몸값은 시장규모를 감안하더라도 미국과 일본에 비해 아직도 저평가돼 있다. 미국은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한해 평균 2520만달러(약 330억원), 일본은 마쓰이 히데키가 6억1000만엔(약 70억원)을 받아 이상훈에 비해 각각 70배와 15배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단순 비교에 불과하다. 몇천만원 때문에 지난 겨울 연봉조정 신청까지 불사하며 홍역을 치렀던 LG의 자존심 센 선수들은 마이너리그에서조차 퇴출당한 이상훈에게 아낌없이 거액을 투자한 구단의 ‘너그러운 처사’에 어떤 마음을 가질까. 모쪼록 이상훈의 기록 경신이 선수단내 갈등의 불씨가 되기보다는 선동렬 박찬호의 경우처럼 선수복지 향상을 위한 이정표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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