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초등학교 학생들이 선생님을 따라 과학관을 찾아 나선다. 입구부터 보잉여객기의 동체 속에 들어가 조종석을 보고 다음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독일 잠수함에 들어가 본다. 다음엔 달 착륙을 하고 돌아온 아폴로 우주선 내부를 훑어본 후 1930년대에 만들어진 탄광의 엘리베이터로 지하 200m를 내려간다. 학생들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두려움에 스릴마저 느낀다.
그러나 발을 다시 옮기면 갓 부화한 병아리떼의 삐악 삐악 소리를 듣고 그 옆엔 갖가지 박테리아와 짚신벌레 같은 단세포 생물들이 현미경의 보온 슬라이드 속을 헤엄치고 있어 여러 가지 미생물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어 다른 방에 가면 대형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심장 모델 속을 통과하면서 쿵쿵거리는 박동 소리를 들으며 심장을 출입하는 혈관들을 관찰하게 된다.
이윽고 출구 쪽으로 나오면 어두컴컴한 중생대 삼림 속에 거대한 공룡들의 포효를 ‘듣고’ 서로 먹고 먹히는 혈전의 현장을 보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이러한 시설이 없다. 어린이들이 미켈란젤로, 다빈치, 피카소, 루벤스의 원작을 보지 못하며 자라는 건 그렇다 치자. 20세기 과학문명의 발자취와 성과물들을 진품이 아닌 모조품으로라도 보고 만질 곳이 없다. 방과후 학원과 PC방밖에 갈 데라곤 없는 우리나라의 어린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바야흐로 청소년들의 눈길을 과학기술로 유인하기 위한 묘안이 백출하고 있다. 교수와 사장들이 일선 고교로 세일즈까지 나서고 있다. ‘과학의 달’인 4월에는 별 관찰 대회, 과학잔치, 과학기술 국민토론회에다 작년부터 시작된 과학책 읽기 운동도 있었다.
사실상 이 모두가 백 번 옳고 안 하는 것보다는 천 번 낫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들 모두가 공히 ‘단기 공사’이고 ‘일과성 행사’라는 것이다. 좀더 체험적인 상설기구나 상설 프로그램으로서 연중 지속되는 과학 대중화 사업이 필요한 것이다.
해답은 바로 과학과 자연에 관한 박물관을 많이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방문해 과학과 자연 공부를 일상생활, 그리고 체험을 통해 누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운동경기는 선진 강대국을 따라 잡으려 안간힘을 다 쓰면서도 도서관, 박물관을 세우고 투자하는데는 그리도 인색하고 꼴찌에 머물러 있는가. 지금부터라도 전국에 몇 개의 자연과학박물관을 세워야 하는지 살펴 10년 계획으로 어린이와 대중을 위한 과학교육의 장터들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세계의 국가별 노벨상 수상자 수가 그 나라 자연과학박물관의 수와 비례한다는 사실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이병훈 명지대 박물관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