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열린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 이봉주 선수가 케냐 선수들의 견제로 5위에 머물고 말았다. 케냐 선수들은 ‘꾸러미’를 형성해 바짝 붙어 달리며 약속이나 한 듯 자기네끼리 속도의 완급을 조절했다. 결국 5위만 이봉주에게 내주고 1위부터 7위까지를 케냐 선수들이 휩쓸었다.
마라톤 등 장거리 경주나 사이클 같은 스포츠에서 ‘꾸러미 전략’이 우승의 향방을 좌우하고 있다. 특히 사이클에서는 뒤에 바짝 붙어 페달을 밟으면 공기역학적으로 매우 유리하다. 혼자서 레이스를 할 때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속도를 늦추기 쉽지만 꾸러미 속에서는 여간해서 속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꾸러미를 형성하다가 마지막 순간 어떻게 스퍼트를 하느냐가 우승을 좌우한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 물리학자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어떻게 꾸러미가 형성되는지를 컴퓨터로 모의실험을 했다. 실험 결과 꾸러미의 형성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앞서가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있는 가속 능력이었다.
이 실험에 따르면 레이스에서 경쟁자들 가운데 13% 이상이 앞서가는 경쟁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가속 능력을 갖고 있다면 선두집단을 포함해 모든 경쟁자들이 ‘꾸러미’를 형성해 달리게 된다. 다시 말해 임계점에 해당하는 13%의 우수 선수가 존재하느냐 여부가 신기록이 나오는 훌륭한 레이스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하는 것이다. 반면 임계점 이하에서는 대부분의 경쟁자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흩어져서 가기 때문에 좋은 기록도 낼 수 없게 된다.
철새도 마찬가지로 V자 편대 비행을 하면서 꾸러미로 수천㎞를 이동한다. 앞서 날아가는 새가 만들어낸 상승기류를 뒤를 따르는 새가 이용하기 때문에 편대로 이동하는 철새는 혼자서 나는 새에 비해 에너지를 11∼14% 덜 쓴다.
세계 최대의 미국 시카고 도축장에서는 일부러 ‘가짜 꾸러미’를 만들기도 한다. 도축장에 끌려 온 소들은 여간해서 시퍼런 칼이 기다리는 공장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안해 낸 방법이 훈련시킨 우람한 황소를 맨 앞에 세워 끌고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힘세고 권위 있는 존재를 믿는 동물의 속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리더를 따라가면서 손쉽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전략은 스포츠나 동물의 세계에서는 물론 인간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리더가 길을 잃었거나 ‘힘센 황소’처럼 사기꾼일 경우 도살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소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리더’의 방향 감각과 도덕성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