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갑(權魯甲) 전 민주당 최고위원은 자신의 역할과 처지를 ‘정거장’에 비유한 적이 있다. 정치자금이 머무르다 가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검찰 수사는 그 정거장의 ‘입구’와 ‘출구’를 모두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 전 최고위원의 정치자금 전반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자금 출처 조사〓권 전 최고위원의 현재 드러난 혐의는 두 가지다. ‘진승현(陳承鉉) 게이트’와 관련해 김은성(金銀星)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을 통해 진씨의 돈 5000만원을 받았다는 것과 김근태(金槿泰) 민주당 의원 등에게 최고위원 경선자금을 줬다는 것이다. 서울지검의 특수1부와 공안1부가 각각 수사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특수1부의 수사 내용이 더 충격적이지만 잠재적인 폭발력은 공안1부 쪽이 훨씬 더 크다. 특수1부 수사는 5000만원을 받은 경위 명목 사용처 등을 조사하면 마무리된다. 그러나 공안1부의 수사는 ‘끝’을 가늠할 수 없다. 자금 출처 조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권 전 최고위원이 나눠준 돈의 출처와 그 돈의 또 다른 사용처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음모론과 파장〓권 전 최고위원은 자신의 금품수수 혐의를 부인하면서 ‘음모설’을 제기했다.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서도 음모론이 나돈다.
음모론의 주 내용은 여권과 검찰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차남 홍업(弘業)씨와 3남 홍걸(弘傑)씨의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권 전 최고위원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음모론은 설득력이 약하다. 권 전 최고위원의 처벌과 두 아들 처리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진씨 사건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된다. 김 전 차장이 2000년 7월 권 전 최고위원에게 금융감독원 조사 무마를 청탁하면서 돈을 줬다는 얘기가 그렇다. 그 정도는 김 전 차장으로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민원’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김 전 차장과 그의 ‘진짜 배후’가 수사의 초점을 흐리기 위해 권 전 최고위원을 겨냥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래저래 권 전 최고위원에 대한 수사는 정치권에 큰 논란과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수형기자 so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