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30일 1989년 이후 13년만에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을 방문했다. ‘청문회 스타’였던 노 후보는 통일민주당 시절에는 상도동을 자주 방문해 자주 YS와 독대했으나 90년 3당 합당 이후에는 발길을 완전히 끊었다.
두 사람은 오전 9시55분경부터 약 10분간 50여명의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사를 나눴다. 노 후보는 이날 사진기자들의 요청으로 YS에게 세 차례나 머리 숙여 크게 인사했다.
▽노 후보〓(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이 시계가 기억 나실지 모르겠습니다. 총재님이 89년에 일본 다녀오시면서 사다주신 겁니다. 제가 민주당 만들고 총재님 비난하고 다닐 때는 풀어 농 안에 넣어뒀는데, 지나고 보니 제 생각만 맞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총재님 생각나면 차고 다녔습니다.
▽YS〓정말 장해요. 여당에 맹장이 많아서 후보가 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지금부터 중요해요.
▽노 후보〓성원해주신 덕분입니다. 제가 정치 출발할 때 잘 이끌어 주셨고, 총재님을 떠나서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성숙한 계기가 됐습니다.
▽YS〓(그런) 여러 경험도 후보 만드는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노 후보〓앞으로도 계속 이끌어주십시오.
취재진이 물러난 후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1시간2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이날 회동에서는 노 후보의 정계 입문 과정과 5공비리 청문회 얘기 등 지난 얘기가 주된 화제였다고 노 후보의 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가 말했다.
그러나 단순히 정담만을 나누지는 않은 것 같다. YS의 대변인격인 박종웅(朴鍾雄) 의원은 “두 분이 정치전반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말했고, 유 특보도 “두 분이 과거의 기억 중 기분 좋은 내용만 이야기하는 가운데, (미래의) 소망도 포함시키는 고도의 정치성이 있었던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노 후보는 3당 합당 이전 상태로 민주화 세력을 통합하자는, 자신의 ‘신민주대연합론’을 YS에게 설명하고 조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지방선거 문제에 대해서도 노 후보는 완곡하고 우회적으로 협조를 부탁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YS는 정치현안에 대해서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에서 이날의 만남에 대해 상도동과 민주당 안팎에서는 ‘매듭을 풀고 협조의사를 간접타진한 자리’로 보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YS의 한 측근이 “김 전 대통령이 지방선거 전에 정치적 의사표시를 할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