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부터 미국을 방문중인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부주석은 1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나 대만 문제를 비롯해 통상 및 인권 등 양국간 현안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30분간 진행된 이날 회담은 비교적 우호적인 분위기였으나 양국간 쟁점에 대해선 상호 의견차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은 회담에서 “현재의 미중 관계에 대해 만족한다”고 말했으나 후 부주석은 회담 뒤 “대만 문제에 양국간 이견이 있을 경우 미중 관계가 손상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후 부주석은 앞서 딕 체니 부통령과 회담을 갖고 오찬을 함께 했으며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돈 에번스 상무장관 등과도 만나 상호 관심사를 논의했다. 방미기간 중 사실상 ‘국빈대우’를 받은 후 부주석은 2일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3일 중국으로 돌아간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인 후진타오 국가 부주석이 자신을 서방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미국 방문을 극도로 몸을 낮추는 ‘저공 비행’으로 일관하고 있다.
과거의 덩샤오핑(鄧小平) 부총리는 물론 현재의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방미(訪美)를 자기 과시의 기회로 적극 활용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물론 후 부주석은 아직 주석이 아니기 때문에 수평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처신은 중국 권력정치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납작 엎드린 후진타오〓이틀간 워싱턴에 머문 후 부주석의 일정은 빡빡했다.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의회에서 토머스 대슐리 원내총무 등 상원의원들을 만났으며, 곧바로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만찬을 함께 했다.
2일엔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 럼즈펠드 국방장관, 폴 오닐 재무장관, 에번스 상무장관 등 미 행정부 고위관료들을 잇따라 만났다. 서방세계에 얼마든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후 부주석은 1일 있었던 체니 부통령의 오찬을 공식 오찬이 아닌 개인오찬으로 낮췄다. 지난달 30일 있었던 대슐리 민주당 원내총무 등 상원의원들과의 회동도 개인 자격의 회동임을 굳이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과의 만남에서는 대만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장 주석이 2월21일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언급했던 내용을 그대로 되뇌었을 뿐이다.
▽화려했던 덩샤오핑과 장쩌민 방미〓79년 1월 미국을 방문했던 덩 부총리는 당당하고 자신 있는 모습으로 미국민을 매료시켰다. 애창곡 엘비스 프레슬리의 ‘러브 미 텐더’를 멋들어지게 불렀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로데오 경기를 관람해 ‘공산주의는 곧 악마’라는 미국인의 인식을 바꾸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덩 부총리는 가는 곳마다 파안대소하며 자신감을 보였고, 방미 성과는 다음해 화궈펑(華國鋒) 주석 겸 총리의 사임으로 이어져 덩 체제 확립에 기여했다.
장 주석도 비슷하다. 89년 톈안먼(天安門) 시위를 무력 진압했던 장 주석은 방미 이전 ‘인권을 탄압하는 강경 지도자’라는 게 서방세계의 보편적 인식이었다.
그는 그러나 호놀룰루에 도착하자마자 와이키키 해변에서 수영을 하고 만찬장에서는 훌라춤을 췄다. 정상회담 직후엔 10분간 영어로 즉석 연설해 미국민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장 주석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은 일거에 정력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세련된 지도자로 바뀌었다.
▽후 부주석의 방미와 미중 언론〓후 부주석에 대한 미 언론의 관심은 어느 지도자의 방문 때보다 뜨겁다. 미국의 언론들은 연일 ‘수수께끼 인물 후진타오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인민일보와 차이나 데일리 등 관영 매체들은 그의 방미 일정을 행사 위주로 간단히 소개하는 데 그치고 있다. 떠들썩한 미국의 언론과 대조적이다.
베이징의 소식통들은 “올 가을에 당총서기직을 물려받을 것으로 확실시되는 후 부주석이 순조로운 권력 승계를 위해 1인자인 장 주석을 의식, 극도로 몸을 낮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