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직장인들의 고용 안정성이 외환위기 이후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직장인의 고용 형태가 단기근속 위주로 재편되면서 15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10명 중 1명꼴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고용시장이 매우 유연하다는 미국(10명 중 2명꼴)보다 오히려 적은 것으로 직장 안정성이 그만큼 낮아진 것을 뜻한다.
▽단기근속체제 정착〓한국노동연구원 전병유(田炳裕) 연구위원은 2일 ‘경제위기 전후 노동시장 유연화’ 보고서를 통해 전체 근로자 중 15년 이상 장기근속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미국은 18.5%에 이르지만 한국은 12.5%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또 1년 미만 근속자 비율은 한국이 34.1%인 반면 미국은 21.7%에 그쳤고 평균 근속연수(남성 근로자 기준)도 한국은 5.15년인 데 비해 미국은 7.16년으로 고용시장이 유연한 미국보다 우리나라가 더 단기근속자 위주인 것으로 풀이됐다.
전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평균 근속연수와 1년 미만 근속자 비중으로 볼 때 장기고용형 구조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활발히 한 30대 그룹(대기업집단)과 공기업 금융 부문의 경우 외환위기 이전에는 1년간 채용과 이직 발생 건수가 전체 근로자수의 20% 수준이었지만 이후에는 최고 50%까지 증가했다”고 말했다.
▽근속연수 단기화의 원인〓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정부가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를 합법화해 사용자가 경영상의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게 되면서 근로자의 채용과 이직이 아주 빈번해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외환위기 이후 3년 반 동안 30대 그룹과 공기업 등의 사용자들이 전체 근로자(148만6000명) 중 28%인 41만6000명을 △권고사직(명예퇴직) 15.4% △계약종료 8.4% △정리해고 4.3% 등 본인 희망과는 상관없이 회사를 떠나게 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 연구위원은 “연평균 비자발적 이직 비율이 외환위기 이전에는 1% 미만이었지만 이후에는 7∼9% 수준으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사용자들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같은 기업 안에서 사업체간 전직(轉職) 등을 통해 인력을 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등 주요 기업의 전직에 의한 채용 비율은 △98년 10월 이전 4∼5% △98년 11월∼99년 10월 11% △99년 11월∼2000년 10월 6.7% 등으로 상승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설립과 파산이 급속도로 이뤄진 것도 평균 근속연수를 짧게 만든 한 요인이 됐다”며 “다만 현행 정리해고 요건이 엄격해 사용자들은 여전히 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는 게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