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城)/김화영 지음 /400면 18,000원년 4월 25일 출간
산문집 ‘바람을 담는 집’을 필두로 시작된 ‘김화영 문학선집’의 네 번째 권이다. 김화영 문학의 심층을 엿볼 수 있는 예술기행문이다. 젊은 날의 열정에서부터 현재까지, 유럽의 고성에서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을 가로 지르며 시간과 삶, 문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글 중에는 30여 년 전에 쓴 것도 있고 최근에 쓴 것도 있다. 글 속의 장소들은 저자가 두 번 혹은 그 이상 찾아가 보았던 곳들이다. 그 장소의 소개나 감상도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 저자의 삶의 순간들이 녹아있다.
‘가령 프랑스 북쪽 브르타뉴에 있는 샤토브리앙의 콩부르 성이나 발자크의 사셰 성 같은 곳. 나는 그 근처를 지날 때면 우회를 해서라도 기어이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여행 일정을 연장하거나 변경하면서까지 그 마을이나 숲속을 그냥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했다. 무슨 특별한 느낌을 스스로에게 강요한지는 않고 그저 하릴없이 빈둥거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육중한 성채나 유물이나 거목 못지않게 작은 풀꽃, 소똥, 시든 잎새, 수상한 저녁의 빛, 그리고 소리도 나지 않는 휘파람을 불려고 애쓰며 담장 밑을 호젓이 지나가는 동네 아이, 그 모든 것이 돌연 중요해지는 것이다. 거기에 나의 현재와 그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예술 기행은 1974년 4월 하순의 어느 날, 프로방스 대학에서 ‘알베르 카뮈의 작품에 나타난 물과 빛의 이미지’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찾아간 카뮈의 무덤가에서 시작된다. 유럽 인도 아프리카를 지나면서 길을 끝내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세상에서 마지막 보게 될 얼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한 떨기 빛. 여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움인 것을 가르쳐준다. 영원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쉬 지나가는 것을 사랑하라고 여행자는 가르쳐준다. 생명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기에. 그리고 모든 것은 이별이기에…… 생명이라는 것을.’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