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서부 태평양상에 위치한 밴쿠버섬의 뱀필드 온대우림지대
《“모든 것은 하나다.” 캐나다 서부 해안 태평양에 위치한 밴쿠버섬 원주민(인디언·현지에서 인디언은 차별적 용어다)들의 생활철학이다. 밴쿠버섬 뱀필드의 밀림지역에 가면 이 말이 실감난다. 나무와 숲과 인간이 하나고, 숲과 바다가 하나다. 과거와 현재가 하나고, 원주민과 외지인이 하나다. 그 하나됨을 지향하는 생활철학이 뱀필드 주변을 캐나다 최대의 밀림지역으로 유지시키는 비밀이다. 밴쿠버섬 서부 해안의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West Coast Trail) 지역은 캐나다 최대의 밀림지대. 인구 400여명의 작은 오지마을 뱀필드는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북쪽 시발점이다. 뱀필드는 그곳까지 연결해주는 대중교통 수단도 없고 택시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오지다. 뱀필드로 향하는 수상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온통 나무였다.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밴쿠버섬 서해안에 길게 형성된 퍼시픽 림(Pacific Rim)국립공원의 일부다. 이 국립공원은 뱀필드 위쪽 토피노 지역의 롱 비치, 섬들로 구성된 브로큰 아일랜드, 그리고 밀림지역인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 등 세 구역으로 이뤄져있다.》
▼"나무-숲-사람은 하나"…생활철학 실천
뱀필드에서 남쪽으로 77㎞에 걸쳐 뻗어있는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은 세계적으로 희귀한 온대우림 지역이다. 온대여서 날씨가 좋은데다 우림이어서 비도 많이 온다. 연평균 강수량 3500mm. 온대우림은 기후조건 탓에 열대우림에 비해 나무가 서서히 자란다. 대신 오래산다. 오래 살다보니 열대우림보다 나무가 더 크다. 수령 1000년이 넘는 나무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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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무는 대개 지름 1.5∼2m에, 높이는 50∼60m에 달한다. 이곳에서 많이 자라는 측백나무의 일종인 시다(cedar)는 1500∼2000년동안 생명을 유지한다. 비가 많이 오다보니 산불도 나지 않는다. 이곳 밀림은 이렇게 천혜의 자연 조건에 힙입은 바 크다. 그러나 뱀필드 지역 주민들과 뱀필드가 속한 브리티시 콜럼비아주 주정부의 노력을 간과할 수 없다. 거기엔 ‘모든 것은 하나’라는 철학이 깔려있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주정부는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 지역을 철저하게 원시의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산림이 무성하다보니 이곳 77㎞를 걸어서 종주하는데 일주일이 걸린다. 주정부는 1990년부터 등산객을 하루 52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10명 이상의 단체 입장도 불가능하다. 밀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더 깊은 뜻은 사람을 원시림 속에 파묻히게 함으로써 원시림와 일체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나무와 숲과 사람은 하나임을 실천하는 것이다.
최근 시험 실시 중인 주민자치 산림관리도 의미심장하다. 주정부는 2000년부터 뱀필드 지역과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의 일부 산림 418ha를 뱀필드 주민들에게 관리하도록 했다. 캐나다 초유의 일이다. 그동안 대기업들에게 국유림을 임대해온 결과, 벌목이 너무 횡행한 것에 대한 반성이다. 뱀필드 주민들은 뱀필드산림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의 데니스 모건 실행이사는 “뱀필드를 둘러싼 지역은 이미 벌목이 많이 행해졌기 때문에 우리 위원회에선 우선 벌목의 양을 제한하는데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생태조사
뱀필드의 숲에서 생태조사를 하고 있는 전문현장실습학교(The School for Field Studies)의 미국인 학생 지니 콜린스.
뱀필드의 또다른 장점은 이곳에 위치한 전문현장실습학교(The School for Field Studies·SFS)와 주민들간의 교감. 이 학교는 세계 곳곳에서 수강을 희망하는 대학생들에게 3개월씩 생태 관련 내용을 강의한다. 수강생들의 공부 무대는 뱀필드의 숲이다. 영국인인 잔 티버샴(55) 교장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뱀필드의 산림와 생태 등에 대해 각종 연구조사를 한 뒤 그 결과 자료는 마을에 제공한다”고 말하고 “학생들과 주민들은 서로 한 가족처럼 지내기 때문에 이곳의 나무와 숲을 지켜내는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자랑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나무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이곳 사람들은 나무를 단순한 생물체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유산으로 본다. 나무에 서린 삶과 문화 역사의 흔적을 중시하자는 것이다.
탁광일(卓光一·48·임학) SFS교수는 “수백년전 원주민이 벌목하려고 도끼를 찍다가 그냥 뒀거나 나무껍질을 벗긴 흔적 등이 남아있는 나무라든지, 원주민들이 숭배대상으로 삼았던 흔적이 발견되는 나무를 각별히 보존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무에 찍혀있는 수백년전 원주민의 도끼 자국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통해 나무와 인간, 과거의 현재의 합일을 추구하는 뱀필드 사람들. 뱀필드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 밀림을 키우는 것은 그곳 사람들의 생활철학이었다.
뱀필드(캐나다)〓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