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일본을 가다]훌리건 대책

입력 | 2002-05-03 20:17:00

일본 경찰관들의 훌리건 진압 시범.오사카〓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6월30일 오후 5시경 위너스(가상 인물)는 월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일본 도쿄(東京)역에서 요코하마(橫濱)행 신칸센(新幹線)을 탔다. 50분가량을 달리자 신요코하마역이 눈에 들어왔다. 위너스는 티켓의 색깔을 살폈다. 노란색이었다. 월드컵조직위가 노란색 티켓 소지자는 신요코하마역에서 내리라고 교통편을 안내한 우편물을 보낸 일이 생각났다. 열차가 요코하마역에 멎자 ‘노란색 티켓 소지자 하차역’ 이라는 큼직한 안내판이 있었다. 위너스는 역 광장에서 서성이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인 오후 6시경 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안내요원들이 역 광장 오른쪽 길로 가려던 그를 막았다. 노란색 티켓 소지자는 왼쪽 길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

▼나라별 좌석배치 달리해 충돌 ‘원천봉쇄’▼

경기장에 도착한 위너스는 4차례나 출입구를 통과하며 검사를 받았다. 그는 티켓 색깔과 일치하는출입구를 통해 골대 뒤 관중석에 들어서고 나서야 국가별로 티켓의 색깔을 달리해 관중의 이동통로나 좌석을 배정했다는 것을 알았다. 맞은 편 골대 뒤 관중석에는 조국팀과 맞붙는 상대국 열성 팬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자 응원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관중석에서 소란이 일었다. 경기장 경비요원들은 재빨리 소란스러운 관중들 주변을 감싸 다른 관중들과 차단했다. 몇 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소란이 계속되자 관중석 출입구를 통해 경찰이 재빨리 진입, 소란을 피우는 관중들을 전원 연행했다.

조국팀이 대 역전극을 펼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며 환호하던 위너스는 다소 흥분된 상태에서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위너스는 안내요원들의 안내에 따라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가야 했다. 역전패한 상대국 관중들은 분함을 참지 못하며 경기장을 빠져나왔지만 역시 같은 길로 되돌아가야 했다. 그는 이들과 부딪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훌리건(경기장 난동꾼)의 원조격인 잉글랜드와 거친 팬을 지닌 독일 대표팀의 1라운드 경기와 결승전을 치러야 하는 일본은 훌리건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일본은 난동 발생 후 효과적인 진압보다 경기장 안팎에서 난동 및 난동 피해 가능성을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일본 훌리건 대책의 대표작은 위너스의 가상 체험에서 드러난 ‘동선 분리’. 난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관중들은 대부분 외국인이며 이들은 전철망을 이용해 이동하고 지리에 어둡기 때문에 경기장 인근 전철역에서부터 동선을 철저히 분리하면 불상사의 발생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관중의 국적별로 티켓의 색깔을 달리해 특히 경기 상대방 국가의 관중과 맞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요코하마시 우타니 겐지(魚谷憲治) 컨벤션도시추진실장은 “관중 6만5000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전철을 이용할 것으로 보고 이들의 동선을 분리하겠다”고 말했다.

축구 경기장 인근 신요코하마 고쓰쿠에 기타신요코하마역 등 3개 승하차역을 지정해 분리하고 각 역에서 경기장에 이르는 길을 다시 두 갈래로 나눠 분리한다는 것. 집단행동이 우려되는 단체 관람객은 기타신요코하마역에서 버스로 경기장까지 가도록 돼 있다.

잉글랜드전을 치르는 사이타마시는 경기장 인근 5개 역과 주차장 등지에서 경기장으로 가는 7개 동선을 만들고 이 중 4개 동선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기로 했다.

경기일 하루 전과 당일은 개최지 전역에서 감시 카메라가 작동되고 경찰이 순찰을 도는 것은 물론이다. 개최지 행정관청은 도로에 방치된 자전거 등 훌리건이 ‘무기’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건을 치우고 후미진 곳에 조명등을 설치하고 있다.

일본 경찰은 극성 팬이 많은 나라에서 파견된 경찰관들의 도움으로 감시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난동을 진압하는 훈련도 꾸준히 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도 요코하마 경기장에서 △난동시 훌리건과 일반 관중 분리 훈련△VIP 경호훈련 △출입구에서 발생한 난동 제압 훈련 △경기장 주변 훌리건 제압 훈련 △세균 화학전 훈련 등이 펼쳐졌다.

요코하마시가 있는 가나가와(新奈川)현 경찰본부 경비부 혼다(本田) 경시는 “난동을 제압할 때도 곤봉 등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도구보다는 투명방패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 [Let's go,Japan]“천 축구공에 일본의 추억 담아가세요




▼‘훌리건 보험’ 등장▼

“훌리건 피해를 보험으로 대비하자.”

일본의 ‘동선분리’ 대책이나 영국의 거듭된 ‘훌리건 출국 금지’ 방침도 월드컵 경기장 인근 상인들의 걱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잉글랜드 독일 등 팬들이 거칠기로 유명한 팀의 경기가 열리는 지역 상인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잉글랜드팀의 경기가 있는 오사카(大阪) 나가이(長居) 경기장 주변 상점가들은 훌리건 피해에 대비해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단체보험에 가입했다. 나가이 상점가는 지하철역을 사이에 두고 경기장과 마주보고 있어 난동이 일어나면 큰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이다.

이 때문에 경기장 주변 6개 상가의 80%가량인 200개 점포가 5000엔(약 5만원)씩 내 100만엔(약 1000만원) 안전 펀드를 조성했다. 이 중 25만엔(약 250만원)은 닛신(日新)화재해상보험에 1000만엔(약 1억원)짜리 보험상품에 가입하고 나머지 75만엔(약 750만원)은 피해를 본 상점에 위로금을 전달할 계획이다. 한 점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액은 100만엔.

나가이상점가진흥조합 후쿠시마 고지(福島光治)는 “훌리건이 두려워 상점을 열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의 수치”라며 “상점들이 안심하고 문을 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준우기자 hawoo@donga.com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