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고지식함이 때로는‘마이너스’▼
모리시마 히로아키는 나카타 히데토시(파르마)와 비교 될 때마다 난처해 진다.
“(나카타와 비교하는)그런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나는 나만의 특색을 살려 노력할 뿐이다.”
포지션은 나카타와 같은 톱 바로밑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신에게 집중되는 공을 다양한 곳으로 분산시켜 게임을 조율하는 필드의 사령관 나카타와 대조적으로, 모리시마의 특색은 오히려 공 없이 움직일때 발휘된다.
피치 이곳저곳을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연계 플레이를 이끌어내고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나카타를 대신해 주전 플레이 메이커로 뛴 작년 11월의 이탈리아전. 세계 최고의 수비벽에 구멍을 뚫은 움직임 이야말로 모리시마의 진면목이다.
나카타가 ‘피치의 왕’이라면, 모리시마는 ‘피치의 근로자’다.
신장 168cm. 축구를 시작한 초등학교 2학년 때 부터 언제나 상대가 자신 보다 컸다.
“움직이면서 플레이 할 수 밖에 없다. 상대를 모두 빼버리고 슛을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모리시마는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린다. 모리시마의 ‘멸사봉공((滅私奉公·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위하여 힘써 일함)’ 태도에 감동한 필립 트루시에 감독은 지난해 국내에서 벌어진 대표팀간 시합 9경기에 그를 모두 출장시켰다.
모리시마는 고지식 할 정도로 매우 성실하다.
2000년 10월에 벌어진 아시안 컵 직후에는 탈진상태가 회복되지 않는 ‘오버 트레이닝 증후군’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골문앞에서 노마크의 슈팅기회를 맞이해도, 너무 신중하게 플레이하다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그는 “좀 더 승부에 강해지고 싶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모리시마는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때의 플레이를 지금도 후회한다. 그는 예선 2차전인 크로아티아전만 출전했다. 선취골을 내준 직후인 후반 34분에 교체 돼 들어갔다. 하지만 이렇다 할 득점기회를 만들지 못한 채 피치안에서 패배의 순간을 맞이했다.
“ 좀 더 적극적인 플레이를 했다면 적은 시간이었지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동점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제대로 경기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98 프랑스 월드컵 뒤 약 1년 동안은 대표팀을 떠나 있었다. “쉬는 시간은 많았지만 외로웠다.반드시 한번 더 국가대표팀에 선발 되고 말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후 대표로 발탁된 시합에서 좋은 플레이를 한 것이 더해져 차곡차곡 쌓였다.”
모리시마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무기로, 4년전의 설욕을 맹세한다.
▼모리시마 히로아키
A매치 58경기 출장, 11득점.
72년 4월 30일 히로시마현 출신.
168cm, 62kg.
토카이대학일고(현·토카이대학 츠바사양고)를 졸업하고 91년에 J리그얀마(현·세레사 오사카)에 입단.
A매치 58경기 출장은 현대표 중 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