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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진세훈/´돈의 오만´을 경계하자

입력 | 2002-05-05 19:02:00


성형외과 의사는 상담, 수술, 치료 과정에 적어도 3번 이상 직접 환자와 대면하게 되는 직업이다. 그래서 성형외과 의사는 환자의 눈과 입을 통해 세상을 느낀다.

과거에는 수술하거나 치료할 때 환자는 불안하고, 걱정되고, 좀 두렵기도 해 거의 모든 경우 눈을 감아 버린다. 예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한 심리를 방어하는 방법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치료도중 환자들이 눈을 뜨고 있음을 알게 됐다.

치료도중 소독약이나 작은 기구라도 얼굴에 떨어지면 위험하기도 하겠지만, 솔직한 의사의 심정으로는 믿지 못해 감시하고자 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 이건 불신이 원인이라 믿는다.

미국 브랜다이스대학의 모리 슈워츠 교수는 이런 실험을 했다. 두 사람씩 짝을 짓고 한 사람이 뒤를 확실히 받쳐 주기로 한 상태에서 나무막대처럼 일자로 넘어지는 실험을 했다.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지만, 한 사람만이 성공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눈을 감고 넘어졌다. 그는 뒷사람이 받쳐줄 것이라는 느낌을 믿기 위해 눈을 감은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심리적 불신을 갖고 돈을 벌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린 시대를 지나왔다.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도 드러났듯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소득이 높은 20% 가구의 소득이 하위 20% 가구 소득의 6.75배로 나타나 1996년의 4.74배보다 소득격차가 더 커졌다. 또 소득불평등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0에 가까울수록 소득분배가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함)는 0.351로 1996년의 0.290에 비해 0.061포인트 높아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용돈이나 곗돈을 모으거나 아르바이트해서, 또는 결혼기념 선물로 성형 수술하는 소박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1억원을 맡기고 모발 피부관리를 1년 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억대 이상의 돈을 들여 미국으로 가 유방수술을 받고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 달에 800만원 정도 드는 호르몬 치료는 부담 없이 받는다고 한다.

더욱 부유해진 부유층 중에서 품격 없는 돈 씀씀이가 드러난다. 돈의 오만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가진 자의 권리나 과시가 아니라 그들이 돈을 통해 보여주는 오만이다. 이는 계층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2등부터 꼴찌에게 도움이 안 되는 1등은 역사상 용납되지 않았다. 1등이 나머지에게 도움이 안 되면서 오만을 만끽할 수 있는 기간은 짧다. 오만은 적대감을 부른다. 그러면 ‘우리’가 없어지고 나와, 타도해야 할 너가 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려면 눈을 감아야 한다. 눈을 감아야 겸손해지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어느 종교든 기도할 때는 눈을 감는다. 불신이 일상화되고 과시가 오만으로 바뀌면 눈에서 광기가 번뜩이고 입에서는 욕이 나온다.

이젠 불신과 오만을 치료하는 의사가 필요할 때다.

진세훈 성형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