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93년 영화 ‘서편제’로 임권택 감독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됐고, 이후 ‘축제(1996년)’로 다시 만났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씨받이’ 등 몇 편 외에 임감독의 옛 작품은 많이 보지 못한 편이지만, ‘서편제’ 이후 ‘태백산맥’ ‘창’ ‘춘향뎐’까지는 나름대로 퍽 관심 깊게 보아온 처지였다. 며칠 전에는 올해의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했다는 ‘취화선(醉畵仙)’의 시사회에도 다녀왔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난 느낌은 한 마디로 지금까지의 임감독 작품들이 보여준 예술적 역량과 성과를 총집대성하여 완성시킨 결정편 같은 느낌이었다.
‘취화선’은 기본적으로 장승업이란 한 천재 화가의 예술세계와 고뇌를 추적한 화선풍(畵仙風) 구도담(求道譚)이 중심바탕을 이루지만, 그 이면에는 임감독이 이전의 작품들에서 끊임없이 가다듬어온 그의 영화의 덕목들, 이를테면 ‘서편제’에서 ‘춘향뎐’으로 심화, 확대되어온 소리의 세계와 정한 깊은 삶의 정서, ‘태백산맥’의 힘찬 시대성과 역사성, 그리고 카메라의 마술사라 칭할 만한 정일성 촬영감독의 숨결이 완연한 아름답고 웅장한 화면구성과 그 특유의 에로티시즘들이 한데 녹아 어울어들어 장관을 이룬 느낌이었다.
하지만 필자가 이 영화를 더욱 감동깊게 본 이유는 그런 영화미학적 요인보다 주인공 장승업의 삶과 예술세계 쪽이었다. 장승업은 당대의 누구나가 부러워할 만큼 ‘잘 나가는’ 화가요 일세를 울릴 만한 성가를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 성가를 외면하고 거듭거듭 다시 태어나고자 고심한다. 그는 어떤 세속적 가치(평가)나 자기 성취 가운데에도 편안히 주저앉아 버릴 수 없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 자기예술 세계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기성적 가치를 훌훌 털고 넘어서기를 소망하는 참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이 세상과도 싸우고 자기 자신과도 끊임없이 싸운다. 세상과 싸우되 눈에 보이는 현상의 질서를 바꾸는 ‘현실개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삶과 정신의 새 바탕을 마련하고 멀리 넓혀 나가며 거기에 귀의하려는 ‘삶의 해방’을 위해서다. 그래서 그가 이 세상 풍물풍정을 눈에 보이는 대로만 그리지 말고 그 속뜻을 담아 그려보라(선비들이 좋아하는 지사적 문인화 전통)는 스승의 권유에 ‘그림은 다만 그림일 뿐’(실경 묘사를 위주한 寫景정신)이라 응수한 것이나, 자기의 수하 행자를 동학 혁명군으로 떠나보내면서도 자신은 발길을 돌리고 마는 것 등은 특별히 되새겨볼 대목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런 그의 소망이 쉽게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우리 삶의 궁극적인 꿈이요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우리 꿈이나 이상일 수없기 때문이다. 그 치열한 거듭나기의 소망과 몸부림(주인공의 지독한 주벽과 광기는방랑기와 함께 그의 사생결단식 싸움의 방식일 것이다)에도 불구하고 장승업 역시 좌절을 거듭하고, 끝내는 가마불 속에 자신을 던져 죽고 만다. 우리의 꿈인 참 자유는 실상 현실의 삶 가운데선 얻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요, 그것이 또한 우리 삶의 실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좌절은 아름답고, 그 좌절의 울림은 여전히 우리 꿈으로 남을 수 있음일 것이다. 그가 죽어 뒤에 남기고 간 ‘화선’의 이름은 그래서 바로 우리 삶과 이 세상에 대한 우리 꿈의 다른 이름에 다름아닐 터이다.
영화를 흔히 대중예술 장르로 말하지만, ‘취화선’은 그런 장르 개념을 멀리 넘어선 달인의 경지를 느끼게 한달까. 한 마디 더 사족을 달자면, 바야흐로 월드컵 개최시기에 즈음하여 외국인들에게 우리 정서를 보여줄 수 있는 매우 적절한 영상작품인 것은 물론, 우리 자신에게도 그림과 음악, 차와 도자기, 수석 등 우리 전통문화와 정신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일깨우고 되돌아보게 하는 미덕은 덤으로 누릴 수 있을 듯싶다.
소설가·순천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