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투수의 공을 쳐본 일이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일반인에게 있어 그건 흥미의 차원을 넘어 두려움이다. 기자는 운좋게도 그런 공포를 만끽한 경험을 갖고 있다. 행운이라고 표현한 것은 친한 투수가 공을 던져주고 싶어도 감독과 코치가 극히 꺼리기 때문이다.
90년대초의 일이다. 기자는 당시 태평양의 투수 양상문(현 LG코치)과 내기를 했다. 그가 5개의 스트라이크를 던져 파울이든 번트든 한번이라도 방망이에 공을 맞출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양상문은 부산고-고려대-롯데를 거치며 당대 최고의 왼손투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미 그때는 구속 130㎞를 겨우 넘기는 은퇴가 임박한 선수. 반면 기자는 동네야구이긴 했지만 잠실과 규모가 같은 구리구장에서 홈런을 날린 관록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걸. 그는 첫 공을 인정사정 없이 몸에 바싹 붙여 기자를 흙투성이가 되게 했고 타석 맨 바깥 선으로 밀려나 벌벌 떨고 있는 기자의 방망이가 도저히 닿지 않는 바깥쪽 스트라이크 5개로 간단하게 요리했다.
기자는 이후 OB에서 은퇴한 장호연과 인하대 주성노감독이 던져주는 쉬운 볼을 안타로도 만들어봤지만 몸쪽 공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선수들끼리도 이런 공포를 느끼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지난주 롯데와 한화의 경기를 보기 위해 부산에 출장을 갔을 때 마침 내려와있던 김용철 야구해설위원은 “올해 신인투수들이 좋긴 하지만 아무나 ‘선동렬급’이라고 부르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선수시절 강타자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이지만 선동렬이야 말로 운좋게 한방 맞아주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는 공포 그 자체였다고 회고했다. 기자도 맞장구를 쳤다. 사실 그동안 선동렬과 비교된 투수는 수없이 많았지만 한국 야구사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투수는 아무도 없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누가 0점대 평균자책을 3시즌이나 기록할 수 있고 80%에 가까운 승률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인가. 기아 김진우가 선동렬의 후계자이고 현대 조용준의 슬라이더가 선동렬을 능가한다는 말을 하지만 이는 사실 새내기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다분히 계산된 호들갑스런 표현.
김진우와 조용준이 이 말에 기분이 상했다면 “그래도 한 경기에서 선동렬을 상대로 홈런 1개에 3타점을 뺏어봤다”는 걸 은퇴후 10년이 지나도록 훈장처럼 달고 사는 김용철 해설위원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기 위해서라도 몇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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