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초등학생까지 고교 수학을 배우는 등 선행학습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을 보면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 입장에서 여러 가지 걱정이 든다.
학업성적은 지능, 학습태도, 가정환경, 학교환경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수학적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과 원리를 습득하지 않고 무조건 앞서 배우기만 해서는 학습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학원들은 한 학기 또는 몇개 학년을 앞서 선행학습을 강조하고 있어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등한시하고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선행학습을 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스스로 찾아서 하는 학생은 드물다. 수학적 기초학습능력이 부족한데도 주위를 의식해 학원의 선행학습에 의존하면 문제풀이 요령은 늘 수도 있겠지만 원리를 응용한 문제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한다.
학교든 학원이든 기초과정을 무시한 선행학습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고교에서는 대입 준비를 위해 정규 교육과정보다 빨리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기간에 지나치게 많은 양을 배우면 오히려 수학을 기피하는 이유가 되고 학원 사교육에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 평가방법의 개선, 적절한 학습도구의 개발, 수학의 저변 확대 등을 통해 학생 스스로 선행학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면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선행학습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에 따라 적절하게 제시된 선행학습은 학업 성취도 향상에 효과가 있다. 수학의 경우 생소한 기호나 개념들을 미리 예습하고 학교 수업시간을 적절히 활용하면 학습 효과가 매우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학생 스스로 적절한 학습을 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일부 상위권 학생에게 선행학습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도 선행학습 자체보다는 학생의 의지와 태도 등이 학업 성취도에 더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얼마전 학생들에게 앞으로 배울 단원의 추천도서를 일러준 적이 있다. 2주 뒤 조사해보니 이 책들을 읽은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학교 시험에 안 나오면 필요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참고서 이외의 수학 서적을 뒤적이는 학생들을 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진정한 선행학습은 앞으로 배울 단원의 문제를 미리 풀어보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독서 경험 등을 통해 수학적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김기식(단국대 부속 고교 교사·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