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초 할아버지와 골짜기 친구들 1,2/황선미 글 김세현 그림/115쪽 7000원 사계절
우리 집 뒤에는 작은 산이 하나 있다. 이 산에 아이와 손잡고 자주 오른다. 비 온 뒤 산 냄새가 짙어 어느 누구나 “참 좋다” 할 만할 때, 산을 내려오던 아이가 한마디 툭 던진다.“나는 산에게 아무 것도 해 주는 게 없는데, 산은 올 때마다 내게 뭔가를 줘. 그래서 산에게 미안해.” 그 산을 단지 인간의 좋은 휴식처로만 생각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그런 기분을 느꼈다. 우리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애완용으로 키우는 토끼, 청설모, 강아지들, 그리고 인간이 원래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명제.
언덕 너머가 아주아주 궁금한 호기심 많은 멧토끼 ‘큰귀’, 먹을 것 찾으러 가기도 싫을 만큼 게으른 청설모 ‘다래’, 이 둘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다. 모든 것이 궁금해서 어디든지 기웃거려야만 성에 차지만 자신의 관심이 아니면 어떤 말로도 설득할 수 없이 어긋나는 아이들. 멋지게 자기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고…. 엄마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하고, 부엉이의 먹이가 될 뻔도 하면서 세상을 배워 나간다.
약초 할아버지 옆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개 ‘반들코’는 혼자 집을 보게 되면서 자기 영역을 확보하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외로움과 두려움을 없애는 길은 스스로를 이겨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모든 생명들이 이런 과정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간다. 그리고 또 다른 생명을 키워가고…. 그런 과정에서 예상치 않았던 일들로 전혀 바라지 않는 삶을 살기도 한다. 겨울 눈 밭에서 총소리에 놀라 아내와 누이동생과 헤어진 고라니 ‘덧니’는 가족과 헤어진 아픔 때문에 산 속에서 사는 약초 할아버지와 너무도 닮았다.
이 이야기는 동물이나 인간은 서로 돕기도 하지만 해가 될 수도 있는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기본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나쁜 동물이나 좋은 동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신의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시각이 참 좋다. 그런데 이야기 내내 무겁게 쇠냄새를 풍기는 ‘덫과 올무’는 그 균형된 시각을 잃어버리고 자연이 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믿는 인간의 유아적 모습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쉬운 말로 풀어내 읽기에 좋았고, 주인공만 도드라지지 않는 그림이 글쓴이의 생각을 잘 읽어낸 것 같다.
김혜원 주부·서울 강남구 일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