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ggybook/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28쪽 8500원 구입처(www.openkid.co.kr)
앤서니 브라운은 뛰어난 그림책 화가들에게 2년마다 수여되는 크리스천 안데르센 상의 2000년도 수상자이며,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그림책 작가이기도 하다.
영국의 셰필드 출신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짧은 기간이지만 병원 화가로서 수술실과 영안실에서 근무했고, 이후 카드 디자이너로서 오랫동안 일하며 서서히 전업 그림책 작가로 변신했다. 세밀하게 묘사해야 하지만 사실성이 지나치면 오히려 끔찍하게 느껴지는 병원에서의 경험과,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었던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은 초현실주의적이라는 평을 듣는 그의 그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림이 너무 난해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정작 어린이들은 매우 재미있어 하고 즐거워한다.
그의 그림책들은 내용 면에서도 독창적이다. 예를 들어 그의 책에 자주 등장하는 침팬지 윌리는 작가 자신이 투영된 캐릭터라고 하는데, 그림책 주인공답지 않게 열등감에 시달리고 또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본성은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등 다소 어두워 보인다. 하지만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일지라도 그만의 독특한 레이아웃과 기발한 구성으로 재미있게 풀어간다는 점 때문에 그의 그림책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또한 생활 속에서 이런 문제는 어린이들이 좀 더 일찍부터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의 그림책들 중에는 그런 의도로 어린 독자들과 대화하려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그중의 하나인 1986년작 ‘Piggybook(돼지책)’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성역할의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다룬 페미니즘적인 작품이다.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아버지와 두 아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빨리빨리를 외치며 모든 일을 엄마가 해주기만을 요구한다. 어느 날 이들이 학교와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You are pigs(당신들은 돼지들이야)”라는 내용의 편지만 남기고 엄마가 집을 떠나버린 사실을 알게 된다. 남은 세 남자는 어쩔 줄 몰라 쩔쩔매고 집도 진짜로 돼지우리처럼 되어 간다. 나중에 돌아온 엄마에게 세 남자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집안일도 함께 나누게 된다.
앤서니 브라운의 책들은 다소 무거운 느낌이 없지 않지만,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기에 영어 문장은 쉽고 이해하기가 수월하다.
또한 약간은 진지한 주제에 대하여 아이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시도가 될 것이다. 막연한 선입견과는 달리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만한 주제의 범위가 의외로 넓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유경 엄마들의 모임 고슴도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