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틀랜타 연합교회 정인수(丁仁秀·47) 담임목사는 20년만에 마주친 한국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과는 정 반대로 길거리의 사람들이 무언가 불안해보였고 둥둥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된 것이다. 애틀랜타 한인교회 교역자협의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올해 안식년을 맞아 4월 24일부터 2주간 한국을 찾았다. 소망 지구촌 갈보리 교회 등을 방문했고 설교의 시간을 가졌던 그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는 어땠을까? “과거에 비해 한국 교회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발전했고 성도들의 활력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내적인 갈등이 많아지고 소외된 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는 한국사회가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인해 불안정해졌고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실직자와 이혼가정이 늘어나면서 교회가 해야할 일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핵가족, 아파트 문화가 급증하면서 물질만능주의, 비인간화의 경향이 두드러진다. 배분의 불균형에 따른 박탈의식이 범죄로 연결되는 것 같다. 교회의 목회자가 세상과 유리되지 않고 사회를 분석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깊은 영성과 맑은 마음으로 전문서적과 신문을 읽고 사회를 분석하고 통찰해야 현대인을 위로하고 새로운 삶의 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다.”
83년 연세대를 졸업한 그는 미국 미시건 주립대(랜싱 소재)에서 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학위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대학 교수나 광고회사 CEO를 꿈꿨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뀐다.
“석사학위를 받은 뒤 내 삶을 돌이키면서 본질적인 가치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어느날 하나님의 신비로운 음성을 듣는 신앙적 체험을 하게 됐다. 모든 현실적 목표가 사라지고 목회자가 나의 길임을 깨달았다.”
그는 89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90년 예일대 대학원에서 종교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새크라멘토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목회 활동을 하다 95년 애틀랜타 연합교회에 부임했다. 부임 당시 300명이던 교인이 지금은 1200명으로 늘어 미국 동남부 한인 교회 중 최대 규모다. 내년 3월에는 한번에 1000명이 예배를 볼 수 있는 1만7000평 규모의 새 교회를 준공한다.
올해로 미국 이민 100주년을 맞는 한국인들은 그동안 미국에 많은 교회를 세웠다. 현재 3500여개의 미국내 한인교회는 이민자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삶의 애환을 듣고 해결해 주는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하지만 교민 사회의 중심이 1세대에서 2, 3세대로 넘어가면서 과거 교회가 친목도모와 구인 및 구직 정보 제공에 그치던 역할을 넘어 교인들의 삶의 질과 문화적 수준 및 영성적 삶을 ‘업그레이드’ 시켜야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한인 교회가 그동안 한인 2세들의 보육원 기능을 했다면 이제는 구세대와 2세들의 갈등을 해소하는 가교이자 한국인의 정체의식을 심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한인 2세들은 미국 버클리대학에만 3000명이나 재학할 정도로 학구열이 높아 교회가 이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또 지난해 9·11 테러를 전후해 미국의 교회와 교인들의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전에는 교회 안에서도 직업적 성공과 물질이 더 중시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9·11 테러 이후에는 가족과 영적 가치에 대한 소중함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따라 교회 출석자가 늘어났고 동성애자 목사 안수 문제가 부결되기도 했다.”
한국 교회의 현안에 대한 질문을 하자 그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미국 교회에서 장로들이 3년 임기를 마치면 1년을 안식한 뒤 재신임 투표를 받고, 목사도 70세 정년을 맞은 뒤에는 교회 주변 약 30㎞ 밖으로 나가 살아야 하도록 돼 있는 점 등을 예로들어 자신의 생각을 우회적으로 전달했다.
“한국 교회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목사나 장로 ‘직분’을 ‘벼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목사나 장로는 자신들의 직책을 ‘자리’가 아닌 ‘기능’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은퇴하면 교회에 대해 전혀 관여를 않는다. 한국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한 교회의 어른들이 이제는 한국 교회를 위해 과감히 기득권을 ‘버리는’ 자기 희생이 뒤따를 때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회복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교회는 언제나 시대적 양심과 새로운 가치를 제시할 수 있는 곳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목회자들의 영적인 각성과 미래에 대한 비전제시를 거듭 강조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