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아버지의 부성애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를 수입한 국내 한 영화사 관계자는 “할리우드가 맛이 간 것 같다”며 미국 영화의 ‘관습성’을 비판한 적이 있다. 이 관계자는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등 한국 영화의 판권이 할리우드에 팔리는 것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런 분석에 많은 영화인이 공감하고 있다.
100년 역사의 미국 영화계가 요즘 내러티브 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울궈먹기’가 범람하고 많은 스토리가 틀에 박힌 권선징악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최근 ‘스타워스 에피소드 2-클론의 습격’과 이를 제작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스카이워커 랜치’를 접한 기자는 할리우드의 최근 부진이 ‘일시적’일 수 있다는 예감을 받았다.
목장이란 뜻의 ‘랜치’답게 370만평가량의 방대한 부지를 갖고 있는 이곳은 포도와 채소밭이 곳곳에 보이고 소 떼들이 한가롭게 오가는 ‘장원(莊園)’ 같은 곳이다. 밤에는 수많은 별도 보인다. ‘목장의 주인’인 ‘스타워스’의 감독 조지 루카스는 “자연을 봐야 큰 이야기를 꾸밀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25년 동안 끌어온 ‘스타워스’를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전설’로 만들기위해 영화적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들의 작업실에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 등 수천여 권의 고전이 꽂혀 있었다. ‘순수 이성 비판’에는 누군가 밑줄을 그어 놓았다. 한 그래픽 디자이너는 그리스 태국 터키 등의 건축 양식을 분석한 전문 서적을 뒤적이고 있었다. 루카스는 “건물의 지하실에는 ‘스타워스’에 관련된 모든 텍스트와 이미지 자료가 보관돼 있다”고 했다.
물론 이런 풍경을 보면서 척박한 제작 환경을 딛고 수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우리 영화계의 ‘불굴의 투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런 조건에서 탄생한 ‘스타워스 에피소드2-클론의 습격’은 진일보한 스토리에 자타가 공인하는 할리우드 최첨단 기술을 얹은 ‘첨단 상품’이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같은 ‘여건’을 갖춘 할리우드가 제2의 ‘스타워스’같은 이야기를 얼마든지 더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말한 국내 영화계의 진단은, 그래서 아직은 성급해 보인다.
샌프란시스코〓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