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1400억달러(약 182조원)의 대외채무를 지고도 오히려 채권국에 큰 소리를 치는 것으로 유명한 러시아가 이름도 낯선 스위스기업 노가(Noga)의 악착같은 빚 독촉에 쩔쩔매고 있다.
6일 러시아 최대 항공기 제작사인 미그의 바체슬라프 멜레슈코 부사장은 이날 개막된 베를린 에어쇼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에어쇼에서 선보이려고 했던 최신예 미그29 전투기 2대에 대해 노가가 독일 법정에 압류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노가는 91년부터 식량 등 생필품을 러시아에 공급하고 러시아산 석유를 받는 중개 무역을 해 왔는데 러시아 정부가 이런저런 핑계로 6300만달러(약 820억원)의 대금을 지불하지 않자 러시아 정부의 자산을 닥치는 대로 압류하고 있다.
2000년 7월에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세계 최대 범선 세도프가 항해 중 프랑스 브레스트에 정박했다가 노가의 요청을 받은 프랑스 법원에 의해 일주일 동안 억류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파리 에어쇼에 참가했던 러시아 전투기 2대도 억류될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노가는 지난해 프랑스 주재 러시아 대사관과 무역대표부 유네스코 주재 대사관의 계좌를 3개월 동안 동결시키기도 했다.
이 때마다 러시아는 관련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해 외교적으로 사태를 해결했다. 그러나 노가는 앞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대통령 전용기에 대해서도 억류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어 러시아 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빚을 받아내려는 노가의 이런 집념은 91년 구 소련에 제공한 14억7000만달러 규모의 경협차관 중 상당부분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나 채권은행의 안이한 태도와는 대조적이다.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