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의 ‘공룡’으로 부상한 국민연금의 자산운용이 1, 2개 정부부처와 전문성이 부족한 이익단체들의 손에 맡겨져 우려를 낳고 있다. 엄청난 규모의 자산운용과 보험금 급여 및 보험료 결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지배구조의 선진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030년에는 무려 630조원이 쌓여〓1988년 보험료를 받기 시작한 국민연금은 운용자산이 지난해 말 현재 75조6411억원으로 불었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2030년경에는 630조원대의 자산을 굴리게 된다.
630조원의 20%를 주식투자로 운용한다고 해도 무려 126조원. 특정 주식을 사들이면 산업계에서도 독점적 지위를 굳힐 수 있는 규모다.
국민연금 적립액이 불어나면 민간저축이 줄게 돼 자금의 ‘중앙 집중’ 현상이 심해진다. 물가 환율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지배구조〓이처럼 엄청난 규모에 비해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크게 △보험급여 및 보험료율 등을 결정하는 재정계산 부문과 △자산운용 부문 등으로 나뉜다.
재정계산 부문의 최고 결정기구는 국민연금법이 정한 국민연금심의위원회.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근로자 대표 △사용자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며 △농협 수협 음식업중앙회 등 지역가입자 대표와 소비자단체 등도 위원직을 나누어 갖고 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이해집단들이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연금의 성격상 어쩔 수 없지만 전문성이 약한 이익단체 대표들이 직접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산운용 부문은 고도의 금융지식과 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분야. 연금관리공단 내 기금운용본부가 공단 이사장의 승인을 받은 자금운용계획을 ‘집행’하고 있지만 관료출신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간의 역할 분담이 모호해 효과적인 지휘 감독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과 관련한 논란은 지금까지 관할권 다툼으로 비춰져 왔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기금운용위원회의 활성화와 지배구조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투자할 대상이 없어〓공단이 8일 밝힌 지난해 기금운용 성적표는 양호한 편이다. 당기순익이 전년보다 57% 늘어난 5조6401억원에 평균수익률도 회사채 평균수익률을 넘는 8.99%.
그러나 외부 위탁규모가 기금자산 총액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갈수록 투자대상을 찾기 어려워지는 등 중장기 자산운용에는 이미 빨간 불이 켜졌다. 올해 들어 정부가 국채발행을 줄이고 기업들도 자금여력이 좋아 회사채 시장을 찾지 않는 바람에 투자처를 발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공단 관계자는 “자산 배분의 장기전략을 세워야 할 기금운용위원회 역시 근로자와 사용자단체 등 이익단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효과적인 전략 방향을 찾아내기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조헌주기자 hanscho@donga.com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