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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수군가족 日영사관 진입실패]韓-中-日 외교마찰 회오리

입력 | 2002-05-08 18:48:00


장길수군 친척 5명의 중국 선양(瀋陽)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진입 시도 사건이 예상외의 외교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파장이 일고 있는 대목은 이들 중 2명이 한때 영사관 구내 비자발급대기실까지 들어갔다가 곧 끌려나온 점. 일본 정부가 이를 공관불가침권에 저촉되는 문제로 인식하고 8일 오후 중국 정부에 전례없이 강력한 항의와 함께 이들의 인도를 요구한 사실을 감안하면 중국 공안당국이 무리수를 둔 게 분명해 보인다.

대사관과 총영사관 등 외교공관은 치외법권 지역.

중국 공안이 일본의 허락 없이 무장병력을 일본 ‘영토’에 진입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주권침해의 문제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국제법상의 ‘공관지역의 불가침(inviolability)’을 위반한 것.

1961년 채택된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 등에 따르면 외국 공관지역에 대한 불가침은 외교특권 중 가장 중요하며 절대적인 권리의 하나이다. 물론 국제사법재판소는 최근 망명 등을 요청하며 공관에 피신한 사람들에 대한 해당 공관의 ‘외교적 비호권(right of asylum)’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공관에 대한 불가침성은 유효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비호권은 인정된다는 게 국제법 전문가들의 견해다.

다만 공관을 떠난 사람들은 비호권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관례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일본의 인도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일본 대사관 측이 주권문제와 한일관계를 의식, 외교적 제스처 차원에서 2명의 인도를 요구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가 전에 없이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우리 정부가 중국의 책임을 운운하고 나설 경우 중국 정부의 입장만 곤란하게 만드는 셈이 되고, 결국 탈북자들의 송환을 더욱 어렵게 만들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중국 공안에 연행된 길수군 친척들의 원만한 처리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일본의 역할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일본 정부가 중국 정부에 대해 좀 더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설 경우 중국 정부도 국제사회의 눈을 의식해 함부로 이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는 조치를 취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낙관하기는 힘들다. 중국이 최근 일부 탈북자들에 대해 제3국 추방 형식으로 한국행을 묵인했지만, 이는 중국 내 제3국 공관 진입에 성공했던 사람들에 국한됐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中, 베이징일대 경계강화, 단속 느슨한 선양 택한듯▼

장길수군(18) 가족들은 왜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주재 일본영사관을 선택했을까.

베이징(北京)의 외교관측통들은 최근 베이징 일대를 대상으로 부쩍 강화된 경계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중국 당국은 탈북자들이 베이징 주재 외국공관을 통해 망명을 시도하는 일이 잇따르자 최근 대사관들이 밀집돼 있는 차오양(朝陽)구 산리툰(三里屯) 일대에 대한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3월 탈북자 25명이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한 후 중국 당국은 대사관 지역을 경비하는 인민해방군 산하 무장경찰대에 곤봉을 차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탈북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무단 진입을 시도할 경우 이를 체포하는 것은 물론 무력까지 사용하도록 지시했다는 전언이다.

지난달 탈북자 3명이 독일대사관과 미국대사관으로 진입해 망명을 요청한 직후에도 대사관 지역 경비인원을 2배로 늘렸으며, 일부 대사관주변에는 철조망을 치기도 했다.

베이징 일대의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도 대폭 강화됐다. 한때 탈북자를 고용했던 한 업체 사장은 “공안요원들의 단속이 더 엄해져 데리고 있던 탈북자 한 사람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선양에는 한국영사관을 비롯해 미국 일본 러시아 북한영사관 등 모두 5개의 외국 영사관이 있다. 길수군 가족 2명은 이중 일본영사관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는데 이는 길수군 가족 망명을 도운 일본의 탈북자 돕기 민간단체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베이징에서 연거푸 탈북자들이 외국공관에 진입해 망명을 시도한 이후에도 중국 언론들이 이를 쉬쉬하고 보도하지 않는 바람에 선양의 외국공관들에 대한 중국 공안당국의 경계는 여전히 느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

ljhzip@donga.com

일시

탈북자 진입사례

사건 해결방향

한국입국

2001.6.26

장길수군 친척 7명 베이징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진입

중국, 나흘 만에 제3국 추방

6.30

2002.3.14

탈북자 25명 스페인대사관 진입

중국, 하루 만에 〃

3.18

〃 4.25

오재혁씨 독일대사관 진입

중국, 이틀 만에 〃

4.28

〃 4.26

김문옥씨 등 2명 미국대사관 진입

중국, 이틀 만에 〃

〃 4.29

탈북자 3명 한국대사관 진입 시도중 중국 무장경찰에 의해 체포됨

정부, 관련국 정부와 협의중

?

〃 5.8

길수군의 나머지 친척 5명 선양 일본영사관 진입하다가 체포됨

정부, 관련국 정부와 협의 시작

?

〃 〃

탈북자 2명 선양 미국영사관 진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