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7시40분, 여기는 서울 동대문 시장. 중앙상가 원단시장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메케하게 구워지는 생선냄새가 보일 듯이 가득하다. 생태찌개, 조림백반이 눈에 띄는 차림표에 이미 시장기는 확 오르고, 조용한 식당 안 14인치 TV에서는 오늘의 날씨가 나오고 있다.
손바닥만한 뚝배기에 뽀로록 끓어오른 김치찌개 1인분이 내 앞에 놓이면 집 나서며 투덜대던 월요일 아침의 땡깡은 사라진다. 칼칼한 김치찌개와 ‘공기밥 하나’에 온 몸이 든든해지고 엷게 끓여진 보리차로 입가심을 마치면 정확히 8시10분. 벌써 시장은 사람들로, 짐 실은 차들로 북적이기 시작한다. 눈 한 번 깜빡이면 지나가는 소중한 아침, 오늘 아침엔 두가지의 요리를 준비해 보도록 하자.
일본 요리의 대표적인 밑간 재료인 가쓰오부시는 가다랭이를 쪄서 그늘에서 말린 것으로 시중에서는 얇게 밀어진 상태를 봉지로 살 수 있다. 정수된 물을 냄비에 담고 손바닥만한 다시마 한 장을 넣고 끓인다. 물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면서 다시마의 연한 바다향이 퍼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다시마물은 팔팔 끓어오르고 이때 바로 가쓰오부시를 털어 넣고는 불에서 내려 조금 둔다. 다시마로 물들인 바다 냄새에 한층 더 진하게 입혀지는 생선의 짭짤하고 들큼한 맛. 다시마와 가쓰오부시로 맛을 낸 국물은 절대로 진하지 않으나 정갈하고 깊은 맛을 준다.
깊이가 있는 팬을 준비하여 김치와 밥을 슬쩍 볶으면 냄새는 좋을지 모르나 너무 뻑뻑하여 아침밥으로는 무리다. 여기에 밥높이보다 2㎝쯤 더 올라오게 가쓰오부시 국물을 붓고 자작하게 끓여주면 훌훌하게 퍼지는 밥알에 시원한 국물이 녹아들고 개운한 김치까지 한술에 올라오는 김칫국밥이다. 아이들이나 노인들을 위한 아침이라면 김치 대신에 계란을 풀어주고 김가루를 조금 뿌려도 훌훌하다.
후루룩 떠먹으며 땀을 내는 김칫국밥이 평일용 해장 메뉴라면 주말 아침의 여유에는 늘적하게 지진 찰떡이 어떠한지? 우선 쫄깃한 찰떡을 준비한다. 인절미도 좋고 콩이나 밤이 박힌 종류들도 구수하니 괜찮다. 팬에 참기름을 몇방울 떨어뜨리고 떡을 올린 후 가장 약한 불에 천천히 지져낸다. 엄지손가락만한 떡 한 조각은 손바닥 반만하게 퍼지고 한번 뒤집어주면 호떡처럼 양면이 빠닥빠닥한 지짐이 된다. 큼직하고 납작한 접시를 준비하여 지진 떡들을 죽 나열한 후 떡을 지지는 동안 뚝딱 만들어진 과일조림을 한큰술씩 올리면 온가족이 한두개씩 집어먹기에 좋다. 과일조림은 생과일을 잘게 썰어 버터, 설탕, 계핏가루에 졸여서 만든다. 버터에 부드러워진 과일에는 톡하고 계피향이 돌고 아삭하니 지진 떡 한 입에 든든해지는 배 속.
좋은 와인을 마시는 밤에는 한 잔 분량을 병에 남긴 뒤 코르크 마개로 꼭꼭 막아둔다. 다음날 아침 속을 풀어주는 김칫국밥을 한 술 뜬 뒤 하룻밤 묵은 마지막 잔의 와인을 마시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다. 간밤의 강한 기운이 다 빠진 와인의 향이 한층 더 성숙하게 느껴지는 것도 기가 막히게 좋지만 그 아침에 와인을 한 잔 음미할 수 있다는 라틴풍의 여유가 더욱 기막히다.
해장술의 참맛은 고독함에 오르는 취기와 곁들여지는 국물의 얼큰함(멀건국과 아침술은 비릿한 맛을 더하게 하므로 삼간다), 그리고 밥 한 술의 온기. 그 온기가 느껴질 때 발끝까지 퍼지는 한 단어는 바로 ‘삶’이다. 세상의 모든 짐을 다 진 듯 밥상에 앉지만 해장소주 한 잔에, 한 술 밥에 다시 시작해 보는 일상이다.
해장용 김칫국밥
●재료〓김치 70g, 가쓰오부시 반 줌, 다시마 30g, 밥 두 공기, 파
●만드는 방법
①찬물에 다시마를 담그고 팔팔 끓인다.
②①에 가쓰오부시를 넣고 불에서 내린 후 맛이 우러나도록 둔다. 가쓰오부시와 다시마는 체에 거른 뒤 국물만 취한다.
③참기름을 한방울만 넣고 송송 썬 김치를 밥과 볶다가 (2)의 국물을 자작히 붓고 끓인다.
④③을 대접에 담고 파를 썰어 올린다.
아침에 먹는 찰떡
●재료〓찰떡 100g, 생과일(사과 배 바나나 등) 50g, 버터 25g, 설탕 2큰술, 계핏가루와 참기름 약간
●만드는 방법
①팬에 참기름을 몇방울만 두르고 찰떡을 올린 후 약불에 오래 눌려가며 지진다.
②과일은 작게 썰어서 버터에 볶다가 설탕을 넣고 조금 더 조린다. 불을 끈 후 계핏가루를 뿌린다.
③①의 떡을 접시에 담고 ②의 과일을 올린다.
▼토마토 주스는 '마시는 해장국'…피자도 숙취해소 도움
술국의 관건은 든든함과 개운함이다. 몸이 축이 나 있는 상태에서 체력을 보강할 수 있는 충실한 메뉴이면서도 끝 맛이 깔끔해야 한다. 국물의 맛을 내는 재료로는 기름진 육류보다 감칠맛 나는 멸치나 조개 등의 해산물을 권하지만, 맑은 양파수프를 먹는 프랑스의 경우처럼 야채가 주 재료가 된다면 고깃국물이 섞여도 괜찮다. 해산물 국물이라면 허브나 파 정도만 썰어 넣어 맑은 맛을 살리고 고깃국물이라면 콩나물이나 양파 등 야채를 함께 끓인다. 동치미나 나박김치 국물에 참기름과 육수를 섞고 밥을 말아 먹어도 개운하다.
토마토 역시 해장 메뉴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다. 토마토 생과일주스는 ‘마시는 해장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얼핏 ‘해장’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피자도 숙취해소에 효험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대학생들이 파티를 한 다음날이면 토마토 피자를 입에 물고 등교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박재은 파티플래너·요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