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경제 포커스]외국기업들 ‘직원만족도 높이기 방안’ 다양

입력 | 2002-05-09 17:21:00


미국계 엘리베이터 제조업체 오티스가 8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LG오티스의 김길수 과장은 얼마 전 자신의 월급통장에 어떤 돈인지 알 수 없는 5만원이 입금돼 있어 어리둥절했다.

알아보니 올해부터 퇴근 후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는 김 과장에게 회사에서 입학원서 전형료를 입금해준 것.

회사 지원을 받아 대학원에 다니는 김 과장은 등록금뿐만 아니라 면접비와 교재 구입비 등 학업에 필요한 모든 비용이 회사에서 지원된다는 걸 알았다.

직원 재교육을 위해 LG오티스가 시행 중인 ‘사원장학프로그램’의 혜택을 받는 직원은 현재 283명. 직원 10명 중 1명이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이다.

전공제한 없이 2개 학위까지 받을 수 있고 졸업 후 의무근무기간 같은 조건도 없다. 강의시간에 늦지 말라고 1주일에 2시간씩 유급휴가를 주기도 한다. 졸업하는 모든 직원에게 오티스의 모(母)기업인 미국 UTC사의 주식을 학점에 따라 50∼100주씩 준다.

김 과장은 “아무런 조건 없는 회사의 꼼꼼한 배려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떻게 해서든 회사에 기여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기업들 사이에 ‘경쟁력의 핵심은 인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외국기업들의 직원 관리 노하우가 관심을 끌고 있다.

외국기업들은 일터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회사가 먼저 직원을 만족시켜야 조직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도(loyalty)가 높아지고 결국 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직원 로열티 높이는 외국기업들〓프랑스계 통신네트워크업체 한국알카텔에서 일하는 이한직 차장은 요즘 힙합 댄스에 푹 빠져 있다. 이 차장은 회사에서 지급하는 ‘자기계발비’로 5개월 동안 힙합댄스 강습을 받았다.

한국알카텔은 80여명의 전 직원에게 매월 10만원씩의 ‘자기계발비’를 지급한다. 직원들은 이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다. 황혜신 과장은 “평소 피로회복을 위해 발마사지를 자주 받는데 지난달에는 자기계발비로 마사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IBM은 ‘카페테리아식 복지제도’라는 이색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직원들이 일정금액 한도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의 복리후생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

모든 직원은 ‘복리후생계좌’를 가지고 있으며 이 계좌에 돈이 바닥날 때까지 가전제품을 살 수도 있고 영어학원에 다닐 수도 있다.

▽금전적 문제가 전부는 아니다〓외국기업들이 직원들의 로열티를 높이는 방법을 살펴보면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이 조직의 일원으로 만족하며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애쓰는 기업이 더 많다.

미국계 제약업체인 한국MSD는 자유로운 근무환경에 신경을 많이 쓰는 대표적 기업.

이 회사는 직원들이 개인적인 사정에 따라 업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근무시간 연동제’를 실시하고 있다. 직원들은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언제든지 출근할 수 있으며 하루 8시간의 근무시간만 채우면 된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 시간이 부족한 점을 감안해 만 12개월 미만의 자녀가 있는 직원들은 매일 근무시간을 1시간씩 줄여준다. 또 매주 금요일을 ‘가정의 날’로 지정해 모든 직원들이 1시간씩 일찍 퇴근해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 회사 이승우 사장은 “직원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회사 문화에 따른 것”이라며 “직원들이 조직에 만족해야 생산성도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한국 존슨앤드존슨도 매월 셋째주 금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해 모든 직원들에게 1시간 일찍, 오후 5시에 의무적으로 퇴근하도록 한다.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는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논다’는 미국 본사 방침에 따라 매월 첫째 목요일을 ‘맥주파티의 날’로 정해 전 직원이 호프집에 모여 얘기하며 논다.

▽한국기업들도 중요성 인식〓최근에는 한국기업들 사이에서도 직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제일제당은 지난해 11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원만족도 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토대로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있고 삼성SDS는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회사 비전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외국기업들에 비하면 직원만족도가 저조한 편.

지난해 9월 미국계 인적자원컨설팅 업체인 휴잇어소시어츠가 아시아 10개국 355개 기업을 대상으로 직원 면담 등을 통해 ‘일하기 좋은 직장’을 선정한 결과 베스트 20개 기업 중 한국 기업은 2곳에 불과했다. 그 중 1곳은 다국적 기업인 한국휴렛팩커드였다.

인적자원 컨설팅업체인 P&O컨설팅 장학수 사장은 “기업들은 과거 핵심인력을 경쟁업체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직원 만족도를 높여왔지만 이제는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직원을 소중하게 여기는 추세”라고 말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