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예쁜 꽃도 10일을 가지 못한다고 하지만 한국 바둑의 꽃은 도무지 질 줄 모른다. 10일 끝난 제14회 TV아시아 속기바둑 선수권대회에서도 조훈현 이창호 9단과 이세돌 3단이 출전해 1∼3위를 모두 휩쓸었다. 실력 못지않게 다른 변수가 많은 속기전에서 조차 한국 선수들은 외국 선수들에게 한판도 지지 않았다. 이로써 한국은 2000년 춘란배에서 왕리청(王立誠) 9단에게 우승을 내준 이후 국제대회에서 한번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다는 기록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퍼펙트 행진을 벌이고 있는 한국 바둑계를 바라 보는 일본과 중국 바둑계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본 바둑팬과 언론은 일본의 추락에 대해 매우 냉소적인 분위기다.
일본 인터넷 바둑 사이트인 ‘바둑 데이타베이스’는 지난달 열린 LG배 1, 2회전에서 일본 선수들이 받은 상금액이 220만엔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7대 기전 타이틀 보유자들이 총출동한 LG배에서 220만엔의 상금 밖에 타지 못했다는 것은 실력 부족 외엔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왕리청 9단은 LG배에서 일본 메이진(名人)전 본선 대국료 66만엔보다 적은 60만엔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기사에서는 “이러니 (국제 기전에선 지고) 빨리 일본에 와서 두고 싶을 것”이라며 일본 기사들의 태도를 비꼬고 있다.
또 최근 요리우리신문의 한 컬럼니스트는 “일본 바둑 기사들이 과거와 같이 혼이 담긴 바둑을 두지 않는다”며 “장기나 다른 분야와는 달리 프로의식이 없다”고 질타했다.
5월 6일자 아사히신문도 “한국 신예들은 서로 연구를 거듭해 신수를 만들어 낸다”며 “일본의 몰락은 개인차가 아니라 공부량의 차이”라고 딱잘라 말했다.
특히 러시아 바둑연맹에서 ‘바둑’ 표기를 일본 말인 ‘고·GO(碁)’ 대신 ‘바둑·BADUK’으로 바꾸자 세계 바둑의 종주국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가지 않느냐는 우려도 팽배한 상태.
이에 비해 중국팬들은 중국 기사들의 연전연패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분발을 촉구하는 분위기다.
LG배 이후 중국의 바둑 인터넷 사이트에는 “도대체 언제 국제대회에서 한번 우승할 수 있느냐. 믿음직한 정상급 기사가 없는 게 아쉽다. 전체적인 수준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위닝샷을 던질 수 있는 기사가 없다”는 요지의 글이 상당수 올라 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축구에 이어 인기 2위를 달리던 바둑의 열기도 점차 식고 있다. 러바이스배 기왕전 등 일부 기전이 속속 폐지되고 있는 것.
하지만 쑥쑥 커나가고 있는 중국 신예에 기대를 걸어 볼만 하다는 것. 한국 신예보다 경험이 적어서 그렇지 실력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다.
중국 바둑 신문인 위기보(圍碁報)는 “한국은 ‘상무(尙武)’의 정신으로 세계 바둑계를 제패하고는 있지만 진정한 왕자(王者)는 아니다. 그들은 바둑을 이기는데만 열중하고 있다. 우리는 바둑의 승부와 문화적인 면을 조화하는 ‘중국의 길’을 가야한다”고 주장했다.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