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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18) 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 18

입력 | 2002-05-12 17:28:00


무당이 직접 하얀 고깔과 성주신의 신옷인 짙은 빨간색 홍천익(紅天翼)을 유미리에게 입혀준다. 유미리는 무당의 춤에 맞추어 머리 위로 오방기를 흔든다.

무당1 잘한다! 이 아가 나보다 더 잘하네!

무당2 너나 너거 엄마나 이 나라에 있었으면 무당이 됐을 거다. 무당이 안 됐으니 가슴하고 머리가 아픈 거지. (신철의 팔을 잡아당겨 일으켜 세운다) 앉아 있지 말고 춤 춰!

내키지 않는 듯 발만 떼던 이신철이 조카의 춤을 따라 손발로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무당1 (손뼉을 치며 자지러지게 웃는다) 후처의 손녀딸과 첩의 아들이 같이 춤을 추는구나!

무당3 (폭소를 터뜨린다) 아이고 웃긴다!

무당2 할매가 웃네.

무당3 고맙다 고마워

무당2 춤추면서 나갔어.

무악(巫樂)이 심장이 뛰는 속도로 잦아든다.

무당은 빨강 파랑 하양 검정 노랑, 다섯 가지 색 오방신장기(五方神將旗)를 대나무 깃대에 둘둘 말아 유미리에게 내민다. 빨강에는 호랑이, 하양에는 세 동자, 파랑에는 산신천왕, 검정에는 두 마리 용, 노랑에는 글씨를 쓰는 노인이 그려져 있다. 하나를 뽑아 깃발의 색으로 길흉을 점치는 신장거리다. 유미리는 성취를 뜻하는 빨강을 뽑았고, 이신철은 마(魔)를 뜻하는 검정을 뽑았다.

무당3 (벌떡 일어나 오방기로 이신철의 등을 때린다) 넌 대체 뭐고? 왜 검정 깃발을 뽑았나? 아무리 하느님이 중하기로 니한테는 조상도 없나! 니는 애비도 에미도 못 봤다 말이가! 아들 딸자식 새끼도 없나! 바다 속에 사는 문어 새끼가!

이신철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명심하겠습니다.

무당3 (짖듯이) 뭘 명심하겠다는 말이가!

이신철 조상을 섬기겠습니다.

무당3 너가 지금까지 했다는 게 다 뭐고!

이신철 …아무 것도 안 했습니다.

무당3 (검은 기름같은 눈으로) 아무 것도 안 했다고! 니 조상 무덤에 찾아간 일 있나?

이신철 없습니다…하지만 앞으로는….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