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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주기자의 건강세상]구제역→입발굽병 의학용어를 우리말로

입력 | 2002-05-12 17:46:00


구제역(口蹄疫)이 다시 축산농가를 불안하고 위태로운 심정에 빠뜨리고 있다.

그런데 구제역은 무슨 병인가. 아마도 구제역이 어떤 돌림병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구(口)는 입, 제(蹄)는 발굽, 역(疫)은 돌림병을 뜻하므로 한자에 박식한 사람은 ‘입과 발굽에 생기는 돌림병’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이야 감도 잡기 어려운 말이다. 이를 ‘입발굽병’이라고 표기하면 얼마나 쉽게 알 수 있을까.

사람에게도 입발굽병 비슷한 병이 있다. 매년 4, 5월에 아이들사이에서 유행하는 ‘수족구병’이 그것. 대부분 5∼7일 만에 자연치유되기 때문에 구제역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전염력이 강하고 손발과 입에 물집이 생긴다는 점에서 소아과 의사들은 ‘사람 구제역’이라고도 부른다. 이 병도 ‘손발입병’으로 부르면 뜻이 곧바로 전달된다.

그런데 입발굽병이니 손발입병이라는 말은 필자가 지어낸 용어가 아니라 대한의사협회가 2001년 초 새로 펴낸 ‘우리말 의학용어집’에 수록된 용어다.

당시 의협은 어렵고 뜻이 통하지 않는 의학용어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으로 바꾸고 책으로 펴냈다. 용어집에서는 견갑골(肩胛骨)은 어깨뼈, 이개(耳蓋)는 귓바퀴, 안구건조증(眼球乾燥症)은 눈마름증으로 바꿨다. 췌장(膵臟)과 이자, 담낭(膽囊)과 쓸개, 골다공증과 뼈엉성증 등은 함께 쓰도록 했다.

의학용어에는 한선(汗腺) 갑상선(甲狀腺) 전립선(前立腺) 등 ‘샘’을 뜻하는 선(腺)이 들어간 용어가 많은데 모두 샘으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한선 대신 땀샘만 쓰고, 갑상선 대신에는 갑상샘과 방패샘을 함께 쓰도록 했다. 전립선은 모양을 본떠 밤톨샘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전립샘으로만 쓰기로 했다.

동아일보사 헬스팀은 지난해부터 의협의 취지에 동감, 가급적 쉬운 새 용어를 쓰고 또 우리말의 특성을 살려 의학용어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의사들은 새 용어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더 많은 의사들은 의협에서 새 용어집을 만들었는지조차 모른다. 이 때문에 아직 병원에서는 의사가 ‘이해할 수 없는 용어’로 환자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는 독자들과 e메일을 주고 받을 때 알기쉬운 새 용어를 쓴다. 의사소통이 잘된다는 것도 하나의 큰 기쁨이다.

질병과 의학에 대한 설명은 그렇지 않아도 쉽지 않다. 의사가 쉬운 용어를 써서 괜한 오해를 막고 이해를 높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의사들이 쉬운 용어 쓰기를 일반화해 또 하나의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 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