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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장세진/믿으라는 정부, 못믿겠다는 국민

입력 | 2002-05-12 18:45:00


‘합리적 기대’란 원래 경제 용어다. 사람들이 모든 정보를 합리적으로 활용해 미래를 예상한다는 것이 ‘합리적 기대’이론이다. 미래란 늘 불확실해 우리의 예상은 오류를 포함하기 마련이지만 체계적인 오류를 반복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스스로 오류를 교정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예상을 업데이트하는 학습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순 명쾌한 착상이 로버트 루커스 교수에게 노벨상을 안겨 주었고, ‘합리적 기대 혁명’이라고 불릴 만큼 경제 이론과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경제 이야기만이 아니다. 위험 수준에 이른 국민적 불신의 문제도 이런 시각으로 한번 살펴보자는 말이다. 합리적 기대이론에 의하면 국민은 믿어야 할 만큼만 믿는다. 국민은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모든 정보를 활용해 어느 정도 믿어야 좋을지를 합리적으로 판단한다.

그 판단이 늘 정확하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믿고, 때로는 지나치게 의심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느 쪽이든 잘못된 예상은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에 스스로 교정해 나간다.

결국 시간이 흐름에 따라 국민은 적절한 수준의 신뢰 또는 불신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도달한 불신의 적정선이 바로 ‘합리적 불신’이다. 따라서 합리적 불신이 지나치다고 국민을 탓할 일은 못된다. 오직 불신할 만한 과거의 행적 또는 현재의 불투명한 제도를 탓할 수 있을 뿐이다.

먼저 원인의 진단부터 올바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국민 일반의 불신이 그저 원망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국민성이나 불신 풍조를 탓하는 소리도 들린다. 이는 결국 국민의 판단력에 대한 불신이다. 그래도 국민은 정부를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논리가 오늘날 통할 리 없다.

국민의 불신을 언론 선동에 놀아난 결과라고 보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이에 대응하려는 역 언론선동, 나아가 언론통제는 오히려 국민적 불신을 심화시킬 뿐이다.

결국 국민의 불신이 합리적 판단의 결과임을 인식해야 올바른 해결책이 보인다.

우선 신뢰는 축적되는 것이지, 믿어 달라고 해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신뢰는 믿을 만하다는 국민의 경험에 의해 시간을 두고 쌓여지는 것이다.

그래도 당장 신뢰가 필요하다면 의심할 수 없는 증거를 보이거나, 움직일 수 없는 투명한 견제에 스스로를 속박하고, 국민의 합리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신뢰의 축적을 대신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점에서 언론의 자유는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 공개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도 저도 없이 국민에게 당장 신뢰를 요청하는 것은 좌절을 부를 뿐이다. 그저 강력하게 의혹을 부정하거나, 언론을 조정 통제하는 것이 우선 불신을 모면하는 지름길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신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불신을 내일의 더 큰 불신으로 미루는 미봉책일 뿐이다. 이것이 합리적 기대이론이 함축하는 신뢰와 불신의 동학이다.

장세진 인하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