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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박상섭/´북한 인권´ 침묵이 금?

입력 | 2002-05-13 18:29:00


8일 중국 선양의 일본총영사관을 통해 탈북을 시도하던 장길수군 친척 5명에 대한 중국 경찰의 강제연행 사건을 놓고 일본과 중국 사이에 외교마찰이 점차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총영사관 구내에서의 연행이 일본의 동의하에 이루어졌는지를 두고 벌어지는 이 논쟁의 진상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영사관 진입을 막던 중국 경찰관의 벗겨진 모자를 친절히 주워주는 일본 영사관원의 우호적 태도를 보면서 현재 진행되는 중일간의 논쟁이 국제적 체면 때문에 생긴 갈등일 뿐 어느 쪽도 인권 문제를 별로 크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 씁쓸하다. 비록 다투고는 있지만 이러한 종류의 골치 아픈 일이 처음부터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중국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정부 탈북자 뒤처리 급급▼

한편 미국총영사관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3인의 탈북자들이 미국으로의 망명을 요구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사건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북한의 현정권은 ‘악의 축’이지만 그 국민에 대해서는 깊은 동정심을 갖고 있다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언사의 진실성 여부가 이번 사건을 통해 시험대에 오르게 되어 미국 정부도 상당히 노심초사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정말 흥미로운 일은 이번 사태의 핵심 당사국인 북한에 관해서는 아무도 언급을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탈북자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데 대해 그 유일한 탈출경로를 이루는 중국은 탈북자들의 개인적 범법행위로 취급하고 있고 일본은 단지 자신에게 직접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점에 관해서만 염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래야만 할 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탈북 행렬이 북한 정치체제의 고질적인 문제에서 비롯하는 만큼 그렇게 소극적이고 대증적인 정책의 약효가 곧 소진될 것임은 손바닥 들여다보듯 뻔하다. 이번 문제가 임시변통적으로 해결된다 해도 계속해서 비슷한 일들이 또 터질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작금의 사태를 두고 대부분의 사람이 단순히 중일간의 외교마찰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문제가 본질적으로 우리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 대해 많은 사람이 침묵하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론 중국을 통한 탈북자들의 안전한 인도를 위해서는 조용한 외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태 전개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당장 취할 수 있는 일은 많아 보이지 않기에 대안 제시도 없이 정부를 비판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닐 것이다. 그러면 과연 우리 정부는 전혀 잘못이 없는가.

탈북자들을 안전하게 입국시키기 위해 조용한 대중 외교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일리는 있다. 그러나 탈북자의 안전을 걱정하면서 그 원인이 되고 있는 북한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는 훨씬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만일 북한이 탈북자의 수용을 문제삼고 나오면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현정부는 출범 초부터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절망적인 북한의 인권상황에 관해 일체 침묵하는 것은 과연 어떤 연유에서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한 태도를 취하면서 주변국에 대해 인권중시의 외교를 요구하는 일이 얼마나 자가당착적인 일인지 생각해 보았는지 실로 궁금하다.

지속되는 탈북자의 문제를 보면 북한의 인권문제는 단순히 윤리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국제질서의 안정과 직결되는 폭발성있는 쟁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핵심 당사국인 북한이 그 문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해결책이 발견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선 북한이 문제를 인정하는 일부터 필요하다. 이 점을 위해 주변 관련국들이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지 모르겠다.

▼북한정권 비위만 맞춰야하나▼

중일 마찰이 어떻게 해결되든 간에 탈북자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이 문제를 근치할 수 있는 국제적 협력방안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아마도 더 심각한 여론의 환기가 필요할 것이다. 여론의 환기를 위해서는 보다 큰 사건이 다시 터져야 할지도 모른다. 계속 비위만 맞추면서 북한 정권의 태도가 혹시나 바뀌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일처럼 무지하고 무책임한 정책이 지속되는 한 인권도, 평화도, 안정도 모두 신기루 같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이 같은 점이 인식되기 위해 더 긴 탈북 행렬이 이어져야만 할지도 모른다. 정말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박상섭 서울대 국제정치학